봄비에 스치는 상념
김소월, 「봄비」
어룰 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 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봄이라는 생명력 넘치는 계절이 이 시에서는 어딘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얼굴 없이 지는 꽃’, ‘얼굴 없이 오는 비’
무언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덧없는 순간을 지켜보는 마음이 아쉽고 애잔하여, 짧은 시이지만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이 강하게 느껴진다.
봄과 화자가 우는 이유는 내리고 있는 비와 함께 시간과 그 마음도 흘러버려야 하기 때문이리라.
얼굴도 없이 스쳐가는 계절이 서럽다
빗금을 치듯 내리는 고은‘봄비’ 속에 함께 흘러내리는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체념.
꽃자리가 꽃이 피어 있는 자리라기보다는 꽃이 지고 남은 자리로 보이는 것은 그래서일까.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꽃이 진 자리, 지나가버린 시간의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한 사람.
그런데 그 울음마저 떨어지는 꽃잎처럼 조용하다.
때로는 어깨의 작은 떨림 하나로 더 많은 마음이 전해질 때가 있다.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사라져 가는 것을 잡을 수 없어 아픈 감정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