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0 프리라이팅

11 냄새

by 우주

12:00 프리라이팅 시작. 오늘의 주제는 냄새.


최근에 맡았던 냄새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 운동하고 돌아왔는데 아빠가 늦은 저녁으로 열무비빔밥을 해드셔서 풍겼던 고추장과 참기름 냄새다. 열심히 운동하고 왔는데 탄수화물을 먹었다가는 말짱 도루묵이 될 것 같아 꾹 참고 컵누들을 먹었다. 밥 냄새가 그렇게 좋을 때가 있다. 결국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나도 똑같이 밥에 열무김치를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었는데, 냄새만큼 맛있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다. 꼭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라고 적힌 것 같았달까.


내가 좋아하는 냄새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매콤한 김치찌개 냄새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 먹는 김치부침개의 기름에 절은 냄새도 좋아한다. 매콤달콤한 비빔 국수의 냄새도 좋아한다. 헬스장에 상주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꼬순내도 좋아한다. 김보람초콜릿의 고급진 초콜릿 냄새를 좋아한다. 방금 막 탈수가 끝난 빨래에서 나는 포근한 섬유유연제 향을 좋아한다. 이제 막 나와서 잔 맨 윗부분에 거품이 1cm정도 낀 생맥주의 냄새를 좋아한다. 할머니댁에 가면 "있는 게 밥밖에 없어서 어떡하냐"는 걱정 어린 할머니 말씀을 뒤로 하고 간장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우리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며 미안해하시면서 웃으시던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때 그 현장의 냄새를 좋아했다.


사람마다 체향이 다르다고 하는데, 본인의 체향은 본인이 알기가 어렵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향이 나는 사람도 있고,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엄청 가까이 가서 맡으면 저마다의 향을 은은하게 내고 있을 것이다. 인공적인 향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향은 우드 계열이다. 숲이나 나무에게서 날 것 같은 향이 좋다. 실제 자연의 향만큼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공적인 향 중에서 제일 거부감이 없는 건 그쪽 계열이다. 개인적으로 비 냄새는 자연이 압승이다. 꽃 향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싶은 냄새는 희망의 냄새다. 희망에도 냄새가 있다면 그건 아마 개나리색의 포근한 봄볕같은 것이리라 생각된다. 내게서 많이 옅어진 우울의 냄새는 여름날 장마같이 눅눅하고 어두운 냄새다. 나는 이 우울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꽤 오랫동안 같이 붙어 살아서 정이 들었다. 가끔 이 녀석의 냄새가 좀 진해졌다 싶을 때는 바로 샤워를 한다. 얘는 물에 잘 씻겨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서 한 가지 향만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가지 이상의 향이 섞여 조화로운 냄새가 나면 좋겠다.


12:27 마침.

(타이머 10분 18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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