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동료로, 집에서는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부모님에게는 말 잘 듣는 자식으로. 그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해내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나'라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늘 타인의 만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조연'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칭찬해도 정작 내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내가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데, 누가 감히 내 삶을 지켜줄 수 있을까.
그날은 유난히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었다. 평소라면 " 이 정도는 참아야지"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겠지만, 나는 처음으로 그 채찍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 내린 첫 번째 휴가였다. 남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죽기보다 무서웠던 내가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피로를 우선순위에 둔 날이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나를 몰아세우지 않으니, 주변의 날 선 시선들도 더 이상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내 편이 되어 단단히 서 있기로 결심하자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죄책감'과 '수치심'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너는 왜 이것밖에 안되니"라며 스스로를 난도질하던 잔인한 짓은 멈출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내 편이 되어주던 날, 나는 비통하면서도 홀가분한 자유를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세상은 차갑고 현실은 무겁지만, 내 안에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을 든든한 아군이 한 명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