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아이를 찾아서

by 헤아림

심리 상담이나 치유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내면 아이'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무슨 팔자 좋게 어린 시절 아이를 찾냐고"라고


하지만 나조차 속인 '괜찮은 척'의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자라지 못한 채 그 시절 방 안에 갇혀 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그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돌아간 그곳에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고함과 깨지는 소리를 피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방 한구석에 웅크린 조그만 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무서워서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무표정했다.


자신이 울면 상황이 더 나빠질까 봐,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아이는 슬퍼할 권리마저 스스로 포기한 상태였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투명인간이 되기를 자처했던 그 아이는 어른들이 쏟아내는 감정의 오물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일찍이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그 아이 곁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보기에 그 방은 너무나 차갑고 외로웠다. 누구 하나 "무섭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는 그 거대한 공포를 혼자서 감당하며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가면을 썼던 것이다. 그 가면이 얼마나 무겁고 숨 막혔을지, 이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마음속으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이는 처음엔 낯설어하며 몸을 굳혔지만, 이내 내 품에서 아주 작게 들먹이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억눌러왔던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아이를 찾는다는 것은, 과거의 불행을 다시 들춰 괴로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때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나를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은 단 한 번도 보살피지 못했던 그 꼬마에게 이제는 그 방에서 나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는 바로 나였다. 아이의 병간호를 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며, 남들 앞에서 작아지던 지금의 내 모습 뒤에는 여전히 그 방에서 떨고 있던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이제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방 밖으로 걸어 나오려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