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약했던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텼던 것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무력감 앞에 나는 당황했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이겨내지 못하고 자꾸만 주저앉고 싶어지는 나를 보며, 나는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 몰아세웠다.
"남들은 더한 상황에서도 잘만 사는데, 왜 너만 유난이야?" 내 안의 가혹한 비평가는 쉼 없이 채찍질을 해댔다. 아이의 병원비, 끝없는 병간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도 웃지 못하는 내가 나약해 보였다.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면 조금만 더 강해지면 다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내가 지금 무너지는 것은 내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무거운 짐을, 혼자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튼튼한 기둥도 수십 년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버티다 보면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을 방치한 채 계속 무게를 얹으면 결국 무너지는 법이다. 나는 내 마음의 기둥이 금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남들과 비교하며 " 왜 너는 저 기둥처럼 매끄럽지 못하니"라고 타박만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버티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이었다. 폭풍전야 같던 집안 분위기를 견뎠고, 울음을 삼키며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쉴 틈 없는 생활고와 간병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남들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파도를 나는 매일 아침 마주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오히려 그 누구보다 강했기에 이 모진 시간들을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거라고.
사람의 마음에는 저마다의'임계점'이 있다. 나는 이미 그 임계점을 수만 번 넘나들면서도 오직 '책임감'이라는 이름 하나로 버텨온 것이다. 지금 느껴지는 이 무력감과 눈물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이제는 제발 좀 쉬고 싶다고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였다.
내가 나를 가엾게 여기기 시작하자 비로소 보였다. 나는 약했던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버텼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줄이 아주 조금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