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없이 맑고 쨍쨍한 날은 특별히 즐거운 소식이 없어도 왠지 기분이 좋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아 주변이 어두운 날은 마음이 우울해지곤 한다. 봄에 햇살이 좋을 땐 어디 나들이라도 하고 싶어 지지만 가을이 되어 일조량이 적어질 땐 기분이 약간 처지곤 한다.
하루의 날씨나 계절도 이렇듯 사람에게 영향을 주건만 인생의 날씨는 어떠할까? 인생의 맑음과 흐림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사는 과정에서의 환경과 결부시켜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생의 날씨가 비교적 맑은 사람이 있고 줄곳 흐리기만 한 경우도 있다. 인생의 날씨가 맑은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대개 경제적으로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생활해 온 경우이다. 하지만 인생의 날씨가 흐렸다가 맑아지기도 하고 맑았다 흐려지기도 한다. 주변에는 어릴 때 부친 혹은 모친이 세상을 떠나거나 갑자기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하여 생활이 무척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 결혼 후 이혼을 하거나 할 경우에도 '구름 낀 삶'이 된다.
나의 부친도 지금은 구순이 되신 연세에도 비교적 쪼들리지 않는 맑은 날씨 속에서 사시지만 어린 시절 줄곳 구름 낀 생활을 하셨다. 1932년 함경남도 북청군 옆 이원군의 남송면이란 곳에서 태어나 어려서 생모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나의 조부가 부친보다 여덟 살 많은 분과 재혼을 하셨다. 부친은 집에 정을 붙이기 어려워 방황을 하며 집안 어른들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공부도 싫어하였고 밤늦게 나가 친구들과 도박을 하며 급기야 등록금을 날리는 일까지 생기니 문제아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중 방학이 되어 일본 동경에서 학교를 다니다 잠시 집에 와 계시던 부친의 삼촌이 아버지의 처지를 알고 도와주려고 그다음 학기 배울 교과서의 내용을 함께 예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곤 개학했는데 그전 학기 때 책을 잘 읽지도 못했던 부친이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막힘없이 또박또박 읽어내자 선생님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칭찬을 해주셨다고 한다. 구름이 낀 날씨에는 이렇듯 정신적인 조력자가 필요한 모양이다. 환경이 어려운 사람에게 생활 여건이 좋은 사람과 똑같은 걸 요구할 경우 그 자체가 비상식적일 수 있다. 이럴 땐 부친의 삼촌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또 다른 삼촌은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부친을 위로해 주기는 커녕 호통만 치고 괴롭히기만 하였다고 한다. 결국 부친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군에 입대를 하였고 그 후 6개월 지나 전쟁이 벌어지며 죽을 고생을 하였는데 남쪽에서 극적으로 가족을 만나 각고의 노력으로 구름 낀 삶을 벗어났다.
부친의 경우 외에도 나의 주변엔 구름 낀 삶을 살아온 친구들이 꽤 많다. 어려서 부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됨에 따라 모친이 대신 생활전선에 나서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이 공부를 하여 명문대를 졸업, 박사까지 마치고 현재 국내 최고 회사의 계열사 대표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가 공부를 잘한 것도 훌륭한 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형편이 어려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늘 밝고 원만하게 생활해 왔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구름 낀 삶의 예가 있다. 내가 대학 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 주변에서 여기저기를 옮기며 하숙 생활을 하였는데 한 친구가 자신의 하숙집은 여자 주인이 아들 하나랑 하숙을 치는데 꽤 괜찮다고 하며 한 번씩 아저씨가 집에 올 때마다 갈비를 궤짝으로 사서 온다고 하였다. 내가 한번 가 봤더니 집도 깨끗하고 하여 그 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런데 처음엔 그런대로 괜찮더니 점점 식사의 질이 나빠지고 그때마다 하숙생들 표정들이 어두워지자 그 여주인은 온갖 세상 투정을 우리에게 하는 것이었다. "날이 추워 장을 안 봐서 반찬수가 적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당신네들 싫은 표정을 하면서.." 매달 하숙비를 주는데도 그 돈을 다른데 쓰는지 음식의 질이 나빠지니 배신감도 생기고 하여 나 포함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겼고 또 다른 일부는 그 집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집을 옮길 때서야 그 주인은 나한테 그때까지 함구하던 사실을 스스름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은 둘째 부인이라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셋집 살림을 하는데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 그러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정부인이 아니어 가장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자신의 자식도 서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여자 주인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였으며 세상으로부터도 냉대받는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하숙생들에게까지 냉대를 받는 꼴이 되다 보니 얄궂은 보복심리가 발동하였던 것이다. 그때 하숙집을 옮기지 않았던 한 친구는 그 여주인이 안 되어 보여서 계속 있어 줬단 말을 나에게 하였는데 그 여주인은 그 친구의 마음을 내심 고마워하기도 하였다. 그 여주인이 나에게 마지막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 사람은 나를 처음 꽤 잘 봤고 성품도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단 말을 하며 아울러 "사람은 속을 땐 속더라도 일단 믿고 봐야 한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리고 나같이 처신할 경우 잘못하면 사회생활에서 고립될 수도 있단 말도 해주었다. 그 여주인은 자신을 이해해 주고 친화적인 이들에게는 무척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결국 자신이 잘 하진 못했다는 것을 시인은 했지만 나 자신도 그 주인을 속 깊이 이해해 줄 정도의 도량은 부족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마지막 내게 해주었던 말은 진정성이 있고 인생을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의 소중한 말이라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구름 낀 삶의 경우를 몇 가지로 스케치해 보았다. 나 자신도 살면서 무척 괴로웠던 시기, 즉 구름 낀 때가 있었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비교적 맑은 날씨의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구름 낀 삶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좀 더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들을 혹 냉대하거나 비웃을 경우 그들은 더욱 상처를 받으며 보복 심리가 생기기도 한다. 구름 낀 환경에서도 동요 없이 꿋꿋이 생활해 나가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이며 진정 맑은 날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아울러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