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동기 한 친구가 한 달 전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 열흘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있다 며칠 전 세상과 이별을 했다. 아직 육십도 안 된 나이에 15여 년 전 상처도 하고 두 아들을 유학까지 보내며 교육에 열을 올렸는데 한의사였지만 경제적인 사정은 썩 좋지 못해 월세 아파트에서 생활을 해왔던 걸로 알려진다. 한의원만 꾸준히 해왔더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직업 외 다른 쪽에 돈이 들어가며 이로 인해 금전적 압박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2, 3학년 때 같은 반 반장을 맡아 왔는데 친화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반을 잘 통솔해왔다. 당시에도 집안이 여유가 없음에도 부모가 장남이었던 그 친구에게 올인을 하여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했다. 그 친구도 자녀교육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터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2년 전 반창회 때 모친이 오늘내일하신다고 했는데 유족들에게 물어보니 아직 모친은 살아 계신다고 했다.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허망하다고 했는데 인생이란 게 이렇듯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니 건강 잘 챙기자는 말 외에 더 할 말은 없지만 살면서 감당 못할 일이 주변에서 벌어질 땐 꼼짝 못 하는 게 인생일 수도 있단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고 계속 꼬일 경우 건강을 챙기기도 쉽진 않을 듯싶다.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워야 꾸준히 운동도 하며 건강도 관리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간혹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다 어느 순간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구름 사이로 내려 쪼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친구에겐 지금껏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것도 자신이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해 보면 갑갑하기 짝이 없긴 하지만 인간으로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
만일 내가 갑자기 건강 이상 진단을 받게 되고 앞으로 얼마 못 살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나는 20대 때 대학 2학년 말 무렵 생뚱맞게도 닥치지 않았지만 앞으로 언젠가 한 번은 다가올 상황에 대한 고민을 지겨울 정도로 하곤 했다. 어느 철학자는 "만일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나는 얼마 전 지인 한 사람에게 "만일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 공기의 밥을 먹겠다 "란 글을 보낸 바 있다.
내가 만일 시한부 삶의 판정을 받게 된다면 지금까지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을 읽어 본 다음 마지막 생각을 글로 남겨 볼까 한다. 대학 때 특별 강연회로 모교를 방문한 함석헌 옹은 위인들이 숨을 거둘 때 했던 유언을 말해 주었다. 내 기억에 괴테는 "인생은 아름답다 (Lebe ist shone)", 칸트는" 인생은 아쉽다"라고 했던 것 같다. 두 유언 모두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이긴 하다.
나는 내가 할 유언을 미리 이렇게 떠올려 본다. "뼈는 갈아서 바닷가에 골고루 뿌리 고, 세상에 태어나 누려보지 못한 것들도 많지만 누려본 것들 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눈을 감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