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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라이벌

by 최봉기

살면서 같은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쟁이란 관계는 때로는 무척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어찌 보면 자신을 채찍질하고 나태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소중한 존재일 수도 있다.


70~80년대 대한민국에 최동원이란 슈퍼스타가 없었다면 방어율이 0점대인 선동열이란 인물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0년 전 최동원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빈소를 찾았던 선동열은 "내가 동원이 형을 바라보며 운동을 했고 이 형만큼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나올 수 있었다"라는 말을 하였다.


최동원은 구위나 변화구 및 제구력이 대학 1학년 때에 이미 국내 최고였던 반면 선동열은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갈수록 기량이 발전하여 프로로 전향 후 최고의 투수란 말을 듣게 되었다. 두 선수는 네 살 차이로 전성기 자체가 달라서 사실 최동원은 프로 입단할 당시 전성기를 약간 지난 때라 할 수 있는 반면 선동열은 프로로 온 후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둘의 대결도 최동원은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것이 선동열이야 이기면 좋고 져도 본전이었지만 최동원은 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시합을 한 것이다.


고인이 된 야구 해설가 하일성의 말에 의하면 "공의 구위만 보면 선동열이지만 연투능력은 최동원"이라 말했다. 실제로 세 번 맞붙어 1:1이 된 다음 3차전에서 15회까지 던져 무승부를 기록하고도 최동원은 3일 쉬고 또 나와서 완투승을 했지만 선동열은 5일 쉬고 나와 1회만 던지고도 버티지 못하며 강판되었다.


야구해설가였던 하일성과 허구연의 경우도 각각 KBS와 MBC를 대표하는 야구해설가였다. 하일성은 현역 때 무명 선수였고 대학 때에는 선수생활을 중도에 접었던 반면 허구연은 고교 때부터 청소년대표였고 대학 때에도 국가대표에 들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큰 부상을 입어 선수생활을 접고 대학원을 나와 대학에서 상법 강의를 했는데 82년부터 프로야구가 시작되자 잠깐 프로야구 감독과 코치 생활을 했지만 전문 해설가로서 지금까지 40년간 중계를 해왔다. 처음 해설을 하던 때를 떠올리면 하일성은 해설가로서의 자질이 많이 부족하였다. 따라서 방송국으로부터 도중하차하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돈 주고 번역을 시켜 일본 프로야구 전문잡지를 보며 연구하고 자신이 해설했던 경기를 다른 해설가가 해설한 것을 녹음시켜 비교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통해 스스로 해설의 질을 향상했다.


허구연은 몇 살 아래 동생 벌이었지만 선수 시절 명성에다 야구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명석하고 논리 정련한 해설을 했던 반면 하일성은 구수한 입담을 바탕으로 한 임기응변과 쇼맨쉽이 나름 장점이었다. 마치 동네 아저씨처럼 구수하게 말을 하며 각종 TV프로에서도 분위기를 잘 만드는 엔터테이너였다. 하일성은 허구연에 대해서 말하기를 "구연이가 있었기에 자신이 더욱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이고 구연이가 패티김이라면

나는 이미자이다"라고 했다.


이렇듯 프로야구와 프로야구 해설에서 걸출한 스타 라이벌이 있었기에 야구 애호가들은 오랫동안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스포츠 이외에도 대한민국 정치사에는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신 김영삼, 김대중에 김종필의 Three Kim은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서로 다투기도 하고 한배를 타기도 하며 어려운 시기에 정치 항해를 해온 정치 라이벌이었다. 이 세명의 정치인들도 나름 자신들만의 개성이 뚜렷했고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정치를 하며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인생에서 라이벌이란 존재는 부담될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대상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남녀 간에 같은 분야의 라이벌이 서로 배우자가 되어 살게 된다면 어떠한 미래가 펼쳐질지 괜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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