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치고 주인공이 없는 경우는 없다. 주인공 없이 조연만 나오는 경우도 가능은 하겠지만 보는 재미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주인공은 모든 스토리의 중심에 있고 조연들과 함께 스토리가 진행된다. 대개 스토리의 극적 효과를 부각하기 위해 주인공은 초반에 갖은 고난을 겪지만 온갖 난관 속에서도 강한 의지와 정의감으로 이를 극복하고 최후의 승자가 된다. 때에 따라서는 악한 자들의 공격을 당하며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를 물리침으로써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빛은 어둠이 있을 때 그 진가가 발휘되듯이 빛의 화신인 주인공이 나오면 늘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어둠의 상징인 악역이다.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란 서자 출신의 한 미천한 사람이 조선 왕실의 어의가 되기까지 그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나온 악역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경남 산음에서 스승 유의태의 제자가 되는 과정에서 그 집 일손들 텃세와 따돌림을 당하였고 스승 유의태의 아들 도지와 그의 모친에게서도 계속 무시를 당한다. 그러던 중 영상대감 안주인 병을 극진히 돌보며 고쳐주고서 값진 선물과 내의원 추천 서신을 받고는 출세를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다 스승의 미움을 받고 쫓겨나 처지가 난감해진다. 하지만 과거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줄을 잇는 병자를 성심껏 치료하다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여 시험을 보지도 못하게 되는데 그 소식을 접한 스승 유의태는 그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되며 다음 해는 과거에 수석으로 합격한다. 그 후 궁궐 내 권력 암투 속에서 과거 약재 밀거래 관련 혐의와 서자로서 양반의 여식과 혼인하여 반상의 도를 어긴 죄로 하옥까지 되며 갖은 고초를 겪지만 어명으로 풀려나게 되고 결국 어의로 정일품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상이 드라마 허준의 주인공에 관한 스토리이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자들의 일반적 성격은 비굴하고 비인간적이며 편법을 사용하여 주인공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국민드라마 '여로'의 '김달중'이란 인물은 그 요건에 딱 부합하는 전형적 악역인데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의 앞잡이로 나와 영구 (장욱제 분)와 분이 (태현실 분)를 괴롭히며 해방 후에도 사장으로 변신하여 분이가 운영하는 식당에 건달을 보내 영업을 방해한다. 모르긴 해도 역대 드라마의 배역 중에서 김달중이란 역만 한 악역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 역을 맡은 배우는 그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길을 지나갈 때마다 어린애들이 멀리서 "저기 나쁜 놈 지나간다"라고 외치며 돌을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드라마 종영 후 배우 생활을 접게 된 아픈 사연도 있다.
드라마가 아닌 실제 삶에도 악역이라 불릴만한 인물이 있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에 황해도 안진사 집 아들 명사수 안중근은 역사의 주연으로 출연하여 조선의 주권을 뺏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시대의 악역 이토오 히로부미를 향해 총탄을 날리며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게 한다. 천주교 신자로서 '도마'란 세례명을 가진 안중근은 한때 교회에서도 살인자로 소외된 적이 있었지만 정의감으로 그것도 군인의 신분으로서 나라를 침범한 적에게 응징한 행위였으므로 살인이지만 그 정당성을 그 후 인정받게 되기도 했다.
인생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하나의 고독한 드라마일지 모른다. 그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는 조연들과 악역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또한 나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할 수 있다. 훌륭한 주인공은 여러 고난과 악역들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삶의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해피엔딩의 삶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