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파트 이전 생활의 추억

by 최봉기

내가 처음 아파트란 곳의 생활을 하룻밤 동안 '맛보기' 했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찬 바람이 쌩쌩 불던 겨울날 친구가 살던 최신식 아파트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때 친숙하지 않던 아파트란 곳에서 일반 가옥들과 가장 달랐으며 부러웠던 것이 목욕탕이었다. 내가 살던 집에서는 한 겨울에 세수를 할 때에는 물을 따로 끓여야 했었다. 따라서 여러 가족이 세수하기 위해 끓인 물을 찬물에 조금씩 섞어서 사용하였다. 하지만 아파트는 틀기만 하면 온수가 나오고 따로 돈 내고 목욕탕에 가지 않아도 목욕을 할 수 있는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또한 연탄 없이도 난방이 되어 따뜻하기만 했다.


그 밖에도 우리 집에서는 빨래를 할 때 일부 세탁기, 일부 손으로 빨고 나서 옥상에 널어놓았고 혹 비가 오면 급하게 빨래를 걷기도 하였지만 아파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름에 에어컨 바람까지 있다면 지상의 낙원이라 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아파트가 아니었을까?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형은 부모님과 단칸방에서 셋방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형편이 좀 나아져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방 두 칸의 연립형 주택으로 옮겼고 거기서는 내 돌 잔치도 가족 친지들을 불러 나름 성대하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여섯 살 때 좀 더 크고 방도 많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우리가 사용하는 방 이외의 방들은 전세를 놓는 통에 세입자들로 북적거리며 마치 여관과 같은 집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할머니가 동생을 업고 옥상에 올라가다 나무로 된 낡은 계단이 허물어져 사고가 날 뻔하였고 동생이 마당에서 넘어지며 눈썹이 찢기는 등 문제가 있어 집 전체를 수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한옥은 불편하기도 하고 낡은 집은 수리도 해야 하는 등 편리하고 깔끔한 아파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정성 들여 도배도 하고 장판 대신 바닥에 종이를 깔아 나스 칠을 하고 문에 창호지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왠지 아늑하였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람이 가끔 야외에 나가서 통나무나 흙으로 된 집에서 쉬고 올 경우 자고서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트에서와는 다른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가 시멘트에서는 인간에게 유해한 물질이 나온다고도 하며 아파트에서는 실내 공기도 잘 배출이 되지 않아 공기질이 야외와 비교하면 매우 나쁘다고 한다.


전통가옥이 아파트로 바뀌며 도시의 경관도 깔끔하게 바뀌었고 생활이 편리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파트 경우는 담너머 옆집이 보이고 대화가 일상이 되는 전통 가옥들과는 달리 옆집 이웃이 누구인지, 누가 뭘 하는지 등은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다. 또한 조금만 시끄럽게 할 경우 관리실을 통해 바로 전화가 온다. 몇 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층의 호수에 누가 새로 이사를 왔는데 어린애들이 넷씩 되었다. 그중 한 애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애가 하는 말이 남의 개인정보를 왜 알려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혹 미국에 와있나 혹은 세상이 이렇게 바뀐 건가 하고 생각하였고 그 뒤로는 그 집 사람들을 보면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집은 몇 년 후 이사를 나갔는데 새로 입주한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보면 인사를 꼬박 하였다.


세상의 이웃 관계는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으며 아무튼 아파트는 주거형태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돔(Dome) 형 아파트'가 나올 것이라고도 한다. 돔이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열리고 닫히며 내부 거주공간의 공기의 질, 기온, 햇볕 등을 조절한다. 이렇듯 현재 인간의 거주환경은 편리함과 유익함을 최우선 요소로 해서 변화 발전하고 있다.


거주환경은 갈수록 편리해지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정신적 만족이 이에 비례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추울 땐 삭풍 소리를 듣고 몸이 오싹해보기도 하고 더울 땐 몸이 땀에 흠뻑 젖기도 하는 환경 속에서 정신적으로는 성장도 하게 되는데 매달 관리비만 내면 추위나 더위에서 해방되는 아파트 생활은 청소년보다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에게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 겨울철 안방에서 윗목에 발을 놓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앉아 지내던 뭔가 부족하던 그때가 따뜻한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편안히 지내는 지금보다 오히려 더 행복했던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인공과 악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