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과 선진국

by 최봉기

우리가 어릴 적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이 중진국이라고 배웠다. 그때 어떤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경제에서 후진국과 선진국이란 말은 있지만 중진국이란 말은 지어낸 말이라고 하였다. 방금 전 네이버 검색에 '중진국'을 입력했더니 70년대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신흥개발국으로 나오긴 하지만 제대로 된 경제용어인지는 판단이 어려울 듯하다. 느낌상 아직 선진국은 아니지만 후진국들보단 좀 나은 나라들로서 듣기 좋게 만든 용어 같기도 하다.


내가 중학교 시절이던 1978년도에 누가 "향후 우리나라도 '마이카'시대가 온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속으로 "웃기는 소리 하시네"라고 비웃었다. 그 시절 여름만 되면 찜통더위에 그나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있는 곳은 은행이 유일했던 것 같다. 그때 지금과 같이 집이나 대중교통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지하철이나 고속도로 휴게실에 휴지가 비치된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무튼 후진국의 단계를 뛰어넘어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은 경제규모에 있어 세계 10위권까지 올라와 있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의 사회분위기의 차이는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첫째, 과거에 늘 신문지상의 단골 이슈였던 '고부간의 갈등'이란 말이 어느덧 사라졌고 '빈부격차'란 말도 '양극화'란 말로 바뀌어져 버렸다. 과거 시부모들을 모시며 살던 일은 인제는 소설 속의 얘기이고 고부가 서로 마주하는 경우는 명절 때 혹은 제삿날 정도에 불과하다. 만일 장남이 노부모를 모시려 할 경우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며 심할 경우는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과거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 때는 있는 집과 없는 집 간의 경제적 차이를 빈부격차라고 했지만 인제는 소수의 사람들이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한 '양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과거 돈이 되면 힘들거나 더럽거나 위험해도 개의치 않고 무슨 일이든 하던 것과 달리 살만해지자 3D업종은 현재 주로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에서 온 노무자들이 담당한다. 제기동에는 365일 고사리를 삶는 공장이 있다. 하지만 고사리는 삶는 과정에서 몸에 유독한 성분이 나오며 몇 년간 그 일을 할 경우 생명에 지장도 있어 공장 주변엔 동남아에서 온 노무자들만 보일 뿐 사장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스포츠의 경우도 과거 헝그리 스포츠의 대명사였던 복싱을 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적어지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셋째, 거지와 밤손님, 그리고 소매치기가 사라진 대신 범죄 조직이 사업화, 전문화되어 간다. 밥을 굶는 사람이 거의 없어짐에 따라 식사시간 때 먹을 걸 구걸하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밤에 담을 넘어 들어가서 TV, 가전제품 등을 훔쳐가는 밤손님도 없어졌고 혼잡한 버스에서 지갑을 소매치기하는 기사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반면 인제는 범죄조직도 특정 구역에서 전국구로 확대되고 간혹 기업과도 같이 전문화 혹은 체계화되고 심한 경우에는 검찰 및 정치인들까지 관련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넷째, 갈수록 인간관계도 금전화, 물질화되며 인간적 혹은 양심적이란 말은 접하기 힘들어졌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나온 것이 돈이고 과거만 해도 인간이 돈을 주물렀는데 인제는 돈이 인간을 주무르는 세상이 이미 도래한 듯하다.


위의 몇 가지 변화를 통해 가난뱅이가 부자로 바뀌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를 간추려 보았다. 생활의 질이 전체적으로 향상되긴 했지만 뭔가 내면적으로는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인간이 사는 세상 이건만 인간 간의 거리감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다수의 인간이 아닌 한정된 몇몇 인간들을 위한 세상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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