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지인 중에는 외화를 중시하는 유형이 있는 반면 외화엔 관심이 없이 오로지 내실에 치중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 앞에서 큰소리 떵떵 치는 사람들을 보면 저런 사람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집안이 워낙 근검절약형이고 속으로 차곡차곡 채워 넣는 스타일이라 포장해서 과시하는 것 자체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자기 PR시대'란 말이 유행하며 남 앞에서 속된 말로 가오를 잡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는데 공감을 하기도 하였다.
대개 외화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람들은 실제의 현상을 마치 무지개처럼 표현하길 좋아한다. 그러면서 남들이 관심을 보이거나 하면 도취되어 마치 춤을 추듯이 설명을 이어나간다. 가령 어떤 사업을 얘기할 경우 상대방이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은 1억이 10억이 되고 100억 도 되곤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사실이 드러나면 1억이 천만 원으로 혹은 빵원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때그때마다 과시의 기쁨을 늘 만끽하는 것이 그들의 사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은 내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면 내실에 치중하는 사람은 남들이 알아주는 것 자체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만족이 있으면 그만이다. 현재 통장에 있는 잔고를 확인할 뿐 미래의 화려함 등은 안중에 없다.
은행 VIP 창구를 들르는 고객 중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명품 양복, 구두에 가방으로 치장하고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과 운동화에 잠바 차림을 한 경우를 보면 간혹은 후자의 재산이 훨씬 많은 경우가 있다. 돈이 아예 많은 경우는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미국에 몇 년 있을 때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인 식당 주인이 손님들에게 "애틀랜타에서 나만큼 현금 가진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는 자랑 섞인 말을 했는데 며칠 내에 집에 도둑이 들기도 하였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는 외화도 필요는 하다. 회사든 식당이든 자신의 제품 혹은 음식의 장점은 방송이든 선전지든 다양한 수단을 통해 주변에 알릴 필요는 있다. 가만히 있다가 제품을 써 본 사람이 입소문을 퍼뜨릴 경우보다 알차게 홍보나 파급 효과가 있긴 하지만 자신하는 것들은 스스로 PR을 하는 것도 상식에 반하지는 않은 것이라 생각된다.
고교시절 국어선생 한분은 별 실력도 없으면서 뭘 좀 아는 듯이 행세하곤 하였는데 공부를 꽤 하는 친구들로부터 실제로는 말만 조리 있게 하지 별 실력은 없다는 평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의고사를 보는데 미리 문제를 보고 와서 답을 가르쳐 주고는 자신이 가르치는 반들의 성적이 좋게 나오게 하여 위의 주임이나 교장, 교감으로부터 자신이 실력 있어 그리된 듯이 포장하였다. 그리곤 우리가 3학년 진학 때 그 교사가 3학년 국어를 맡는 걸로 내정되었는데 당시 몇몇 뜻있는 친구들이 주임 선생 댁을 방문하여 그 결정을 철회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으며 다행스럽게도 다른 교사로 바뀌게 되었다.
인제는 고인이 된 모대학 한문학의 대가란 평을 받던 이모 교수는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를 때 '선생님'으로 부르라고 하셨다고 한다. 권위란 자신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서 인정해주는 것이라 하니 스스로 속이 꽉 차있는 사람은 뭔가 달랐던 모양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조선 때부터 겸손을 선비의 미덕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심한 경우 집에 쌀이 없어 밥을 굶을 때에도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것까지 미화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세상에는 내실을 갖춘다면 어느 정도의 포장은 별 흉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우리 주변에 내실 없이 위선까지 동반한 외화로 스스로 이미지를 구긴 경우가 더러 있다. 황모란 사람은 과학자란 사람이 세모 때 종각 타종 등 온갖 행사에 나와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다가 결국 정체가 탄로 나며 추락의 길로 갔고, 개신교의 오 모란 목사는 학위나 학력을 거짓으로 속였다 지탄을 받았는데 탄로가 난 후에도 다시 교회로 돌아와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며 뻔뻔하게 다시금 목사로 행세하고 있다.
외화란 말은 한마디로 포장이고 내실은 알맹이라 한다면 제대로 된 알맹이에 포장까지 좋으면 누구도 뭐라 할 일이 없다. 내용물은 무지 좋은데 너무 포장을 하지 않고 겸손으로 일관만 하여도 약간 갑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가 내용물이 형편없으면서 포장만 한 것보단 그래도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