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와 금수저

by 최봉기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흙수저'와 '금수저'가 있다. 흙수저는 어릴 때 금수저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금수저를 꿈꾼다. 어릴 때 금수저들은 부모가 특정 분야에서 잘 나가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대개 전문직의 경우는 봉급생활자들보다 수입이 많았기에 좀 더 좋은 집에서 좀 더 좋은 옷에 좀 더 나은 걸 먹으며 지낼 수 있었다. 사업을 해서 한 밑천을 잡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흙수저는 부모의 급여가 그다지 많지 않은 봉급생활자이거나 조그만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과거에는 자녀가 서너 명씩 되었기에 가족 부양하랴 자녀 교육시키느라 다들 빠듯한 생활들을 했다.


나는 어릴 때 주변 친구들보단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다. 지금 고인이 된 한 친구는 간혹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우리 집 상이 꽤 푸짐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금수저들은 대개 공부를 잘하였다. 부친을 닮아 두뇌가 좋고 공부하는 환경도 좋아 농땡이를 부리지 않는 경우 반에서 등수 안에 드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흙수저 중에서는 열악한 환경에도 두뇌가 총명한 몇몇은 전교 등수에 드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어릴 때 흙수저였던 경우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었고 금수저였던 경우가 윤보선, 김영삼 정도였다. 이중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 사람이 박정희였다. 일제 강점기 때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군인이 된 것도 순사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잘 살 수 있다는 게 군인이라 그리한 것이었고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경제개발을 통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려 하였다. 우리가 어릴 때 귀가 따갑게 불렀던 노래가 있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반면에 금수저였던 사람이 김영삼. 그는 박정희가 장기집권 후 몰락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도 한다. 부마항쟁과 YH여공 신민당 점거농성 사건 등을 통해 민심이 박정희에게서 멀어지게 하는데 기여하였고 이에 결국 박정희는 위기의식을 느꼈으며 결국 최측근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YS는 어릴 때 금수저였는데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한량처럼 지내며 정치활동을 하다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가 대통령 때 했던 하나회 일망타진, 실명제 전격 실시 등의 치적은 다른 정치가들이 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흙수저 집안에 금수저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금수저 집안에 흙수저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나름 갈등이 발생하곤 한다. 전자의 경우는 과거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두 집안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을 나름 재미있게 보여주었다. 후자의 경우는 재벌가에 중류 정도의 사람이 사위나 며느리로 들어가는 경우인데 삼성가 딸과 결혼한 한 남자는 자녀까지 낳고 잘 사는 듯하다가 결국 재산 문제로 이혼을 함에 따라 경제적 차이로 인한 갈등 극복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과거엔 금수저 집안에 고시를 통해 판검사나 변호사인 흙수저가 열쇠 3개를 조건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꽤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일도 적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과거에는 전문직의 공급이 수요 대비 부족하여 흙수저에서 이를 공급받았지만 인제는 금수저 내에서의 공급 확대로 금수저끼리 스왑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 한다.


조선시대 때에는 신분에 따라 계급이 정해져서 양반, 중인, 평민, 상인, 천민으로 나뉘었는데 양반은 노비와 같은 천민을 쌍것이라 부르며 인간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제는 그러한 신분간 차별은 없어졌다 하지만 경제적인 차이란 게 그 신분의 사이로 삐집고 들어와 있다. 결혼 당사자들은 서로 사랑하며 죽어도 못 떨어진다 해도 양가 부모들은 서로 어느 정도는 주판을 굴리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별 사랑도 없이 흙수저가 금수저를 통해 처지를 바꿔보려 할 때인데 이런 경우는 결혼 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리라 본다. 결혼 후 문제가 심해지면 법정에 가는 경우도 있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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