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과 자유

효봉스님과 시인 김수영 스토리

by 최봉기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다. 그 자유의 추구 범위는 어찌 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 5일 동안 일이나 공부를 하다 토, 일 쉬고 월요일에 다시 원위치로 복귀하며 시작되는 구속은 누구에게나 며칠 더 자유롭고 싶은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그 보다 더 큰 아쉬움도 있다. 군 복무를 해 본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군에서 휴가를 받아 3박 4일간 꿈같은 자유를 맛보다 부대에 복귀하여 다시금 구속이 시작되는 심정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 때 가지는 자유는 또한 얼마나 달콤한지 경험 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구속이 없는 상태는 일단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돈으로부터의 자유는 돈의 구속으로부터 해방, 즉 돈을 마음껏 쓸 수 있음을,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는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 즉 시간에 제약 없이 마음껏 뭐든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돈과 시간은 결국 인간이 뭘 하려 할 때에 인간을 구속하는 것들이다. 우스꽝스럽게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양극단의 존재가 있긴 하다. 그건 '백만장자'와 '거지'이다. 어찌 보면 백만장자도 그 이상의 부자보다는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면 오히려 거지가 백만장자보다는 돈의 자유란 측면에서는 우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존심과 창피함을 던져 버리고 빌어먹고 사는 마음으로 일관할 경우 거지만큼 자유로운 존재도 없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와세다 법대에서 법을 전공하고 고등법원 판사로 일하던 한 조선인이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을 죽인 조선인 피고에게 별생각 없이 사형을 선고한다. 그 후 법정에서 당당했던 피고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떠오르게 되어 마음에 큰 파문이 일자 앞을 지나가던 엿장수에게 말을 건다. "당신의 엿을 모두 사 줄 테니 엿장수로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오." 그리고는 세상의 직업과 배우자 및 자식에다 입고 있던 옷까지 던져 버리고 3년간 전국을 엿장수로 돌아다니다 드디어 금강산에서 출가를 한다. 그가 성철, 법정의 스승이었던 '효봉스님'이다.


엿장수는 거지와는 약간 다르지만 뭔가 통하는 데가 있어 보인다. 엿장수는 구걸을 해야 하는 거지와 달리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만 벌뿐 나머지의 욕심은 버린다. 그 버린 욕심만큼 자신을 옭아매고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구속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현실의 삶 속에서 정치적으로 타협하거나 혹은 기득권에게 유리한 가치를 추종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올곧게 또한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사는 사람을 우리는 '자유인'이라 부른다. 자유인의 표상과도 같이 평가되며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 대신 일부러 힘들고 고된 삶을 평생 살아온 한 시인이 있다. 그는 '김수영'이며 아깝게도 48세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능력만 보면 낙제생이었다. 변변한 직업이 없이 수입이란 게 고작 원고료나 번역료이다 보니 생활이 쪼들려 양계장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세상과 이별하는 날도 원고료를 받아 문인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가다 인도를 덮친 과속 버스에 치여서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역정을 본다면 약간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그리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모더니즘에서 시작하여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쓰다가 자유가 억압된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며 거침없는 시어로 사회참여를 주장하였다. 특히 나는 대학시절에 4.19 직후에 나온 그의 시 '푸른 하늘을'을 읽은 다음 몸과 마음속 깊이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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