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날과 화창한 날

영화 '챔프' 스토리

by 최봉기

매일 쨍쨍한 날만 있다면 화창한 날의 고마움을 제대로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늘 비 오는 날만 있다면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비의 고마움을 또한 잘 모를 것이다. 비가 그치고 날씨가 좋아지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어디 좋은 곳으로 나들이 가서 즐거운 시간도 가질 수 있다.


궂은날과 화창한 날을 삶에 대비한다면 일이 잘 안 풀리는 때와 잘 풀릴 때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처음에 어떤 사업을 시작했는데 막힘없이 일이 계속 순조롭게 잘 풀릴 경우, 이는 위험한 신호일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큰 시련이 닥치면 평정심을 잃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좌절될 수도 있다. 성공한 사업가의 경우 초반에는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산전수전 겪고 몸으로 사업을 터득한 후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


궂은날 없이 화창한 날만 살아나갈 경우 삶 자체에 대한 이해나 성숙함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고자 하던 일이 잘 되지 않고 하늘이 원망스러운 경험을 해본 자만이 실패의 고통 후 가지는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살면서 계속 좌절만 경험하며 지내는 사람이 혹여나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각별한 위로와 격려를 해줄 필요가 있다. 만일 그가 정신적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세상을 스스로 하직한다면 그건 분명 개인의 문제이지만 넓게 보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1979년에 상영된 영화 '챔프'에서는 한 복서의 화창했던 챔피언 시절과 은퇴 후 궂은날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과거 챔피언으로 온갖 주목을 받던 빌리 플라인(죤 보이트 분)이 은퇴 후 술과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폐인이 되자 그의 아내 린다(페이 더너웨이 분)은 그를 떠나고 어린 아들 티 제이(리키 슈로더 분)만 남는다.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챔프라 부르며 다시 챔피언이 되리라 굳게 믿는다. 어느 날 재혼하여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한 린다가 아들을 찾아왔는데 플라인은 그녀에게 자식까지 버리고 떠나더니 무슨 생각으로 찾아왔느냐고 다구친다. 아들은 그녀가 생모인지 전혀 모르고 아빠의 지인 정도로만 알고 있던 그녀가 자기를 다정하게 대해주자 그녀를 따른다. 그 모습을 보고 플라인은 묘한 질투심을 느끼며 재기하여 아들을 기쁘게 해 줄 각오를 새로이 한다. 드디어 수많은 관중들이 운집한 경기장에서 재기전이 열린다. 그는 사력을 다해 싸우고는 힘겨운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락커에 와서는 숨을 거둔다. 아빠를 부르는 아들의 애처로운 비명만이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린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티 제이의 손을 잡는다


이상 삶 속에서 궂은날과 화창한 날을 스케치해 보았다. 화창한 날 다음 궂은날이 되기보다는 궂은날 다음 화창한 날이 오는 게 좋은 순서 이리라 본다. 하지만 인생은 정해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므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때 영화로운 삶을 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나락에 떨어지기도 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무튼 궂은날의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화창한 날의 영광이지 않을까? 또한 현재 화창하다고 하여도 앞으로 혹 닥칠지 모르는 궂은날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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