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영화 해바라기, 닥터 지바고, 애수 스토리

by 최봉기

심수봉의 노래 중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란 노래가 있다. 80년 중반에 꽤 히트했던 노래였다. 그 노래는 남자란 존재가 여자를 만나 서로 헤어질 땐 겉으론 슬픈 척 하지만 속으론 웃어 버린다고 빈정대는 내용이다. 누가 남자의 입장에서 '남자는 배, 여자는 암초'라 맞대응을 한 걸 봤는데 순간적으로 기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남자로서라기 보단 하나의 인간으로서 한 이성과 만나 적당히 즐기다 단물이나 빼먹고는 또 다른 짝을 찾아 서성대는 인간들을 인간 말종들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가지고 장난질하는 사람은 응당한 죗값을 치르는 걸 내 눈으로 목격한 바 있다 ('오후의 대화' 8편 참고).


남자와 여자는 함께 붙어 살기도 하지만 잠시 헤어져서 지내야 하거나 또는 예기치 않은 일로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청춘남녀가 만나 서로 떨어지기 싫어질 때에 하필 남자는 피치 못하게 함께 있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그로 인해 서로 영원히 헤어지거나 사랑이 이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경우가 있다. 내가 본 적 있는 몇몇 영화가 그러하다.


우선 소피아 로렌 주연 영화 '해바라기'. 해바라기란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시골 나폴리 살던 조반나 (소피아 로렌 분)이 밀라노에서 온 안토니오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결혼을 하면 징집이 안 되리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는데 남자는 곧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가게 된다. 그 후 조반나는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게 되지만 그녀는 그럴 리 없을 거라 생각하고 러시아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닌다. 조반나는 결국 천신만고 끝에 안토니오를 찾게 된다. 하지만 그는 부대에서 낙오되어 훼매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는 소련 여인을 만나 두 딸을 둔 가장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조반나는 다시 이태리로 돌아와 나이 든 남자와 결혼한다. 아들도 낳고 그럭저럭 살고 있는 조반나에게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가 다시 찾아와 결혼하자고 하자 조반나는 흔들리지만 결국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고 슬프게 끝나는 스토리의 영화이다.


두 번째는 오마샤리프 주연 '닥터지바고'.

러시아의 명문에 태어난 의사이자 시인인 유리 지바고(오마샤리프 분)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고 그로 메코가 의 양자가 된다. 지바고는 양부모의 딸 토냐와 결혼하고 군의관으로 전쟁터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아름답고 정렬적인 간호사 라라를 만나 사랑하게 되어 함께 밤을 보내고 헤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러시아 혁명과 전쟁으로 두 사람은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곤 8년 후 어느 날 전차에 있던 지바고는 차창 밖의 라라를 발견하고서 급히 쫓아가지만 결국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게 되는 또 하나의 슬픈 스토리의 영화.


세 번째 영화는 로버트 테일러, 비비안 리 주연 '애수(Waterloo Bridge)'. 1차 대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워털루 다리를 산책하던 로이 크로닌 대위 (로버트 테일러 분)은 공습으로 대피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하로 피신한다. 그때 그는 핸드백을 떨어뜨려 쩔쩔매는 한 처녀를 도와주며 둘은 가까워진다. 그녀의 이름은 마이러 레스터 (비비안 리 분)였고 극장에서 공연하던 무희였다. 그날 밤 극장 무대에서 춤을 추던 마이러는 객석에서 웃고 있는 로이를 발견하며 놀란다. 서로는 사랑하게 되며 다음날 로이의 청혼으로 이어지나 참전으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전쟁터로 떠나는 로이를 마중하러 급히 워털루역으로 나간 마이러는 공연시간을 못 맞춰 공연단에서 쫓겨나고 만다.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마이러가 그 후 전사자 명단에서 로이를 발견한다. 상심에 빠져 떠돌던 마이라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곤 어느 날 워털루역에 호객 차 나갔던 마이라는 건강하게 살아 돌아온 로이를 귀국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발견한다. 로이를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육체가 하락하지 못한 몸이 된 마이라는 회한의 눈물만을 흘리며 워털루 다리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지게 되는 슬픈 스토리의 영화.

위의 세 가지 영화에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나온다. 첫째,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는 둘이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을 한다. 둘째, 이들 사이에는 전쟁이란 피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여 둘이 결별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셋째, 결국 두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이어가지 못하고 모두 비통하고 애절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만일 두 남녀가 순수함 없이 조건으로 만났거나 건성으로 혹은 엔조이적인 사랑을 했다고 할 경우라면 서로의 피치 못하는 이별의 상황 자체가 웃기는 얘기지만 남자나 여자에게 새로운 만남을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얄퍅함이 없기에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열정이 가슴속 깊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세상의 모습이 갈수록 물질적이고 인스턴트적이다 보니 전쟁이 아니라 군입대만으로도 서로 사랑했던 남녀가 헤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정한 사랑이 있는 경우에는 군대란 결별 상황도 별 문제는 되지 않을 수 있다.


현재 남녀 간 사랑의 모습은 그 본질을 의심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의 이유는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에릭 프롬의 말에 의하면 사랑의 본질은 "**때문이 아니라 **임에도 불구하고"라고 한다. 남녀가 서로 흥정하려 하기 때문에 손해보지 않을 생각만 하지 진정 믿고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내는 나의 남편이 예상치 못한 무슨 일로 지금처럼 집에 안정적인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할 땐 과연 어찌할 건지? 또한 남편은 만일 나의 처가 예상치 않은 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땐 과연 어찌할 건지를 한 번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는 것도 나름 경박하지만은 않은 사색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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