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는 영어로 Romanticism. 어릴 적엔 대학생들이 청바지 입고 생맥주 마시면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게 낭만인 줄 알았다. 70년대에 길에서는 낮에는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하고 자정이 되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얼쩡거리던 사람들을 파출소로 데려와 통금이 해제되면 즉결심판이란 걸 받게 했다. 당시 명문대 학생들은 즉결에서 판사가 "어느 학교야?" 할 때 "**대학교인데요"라고 해서 졸지에 판사의 대학 후배가 될 경우 재수 좋게 집에 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낭만주의의 의미를 정확히 살펴보면 도덕이나 질서 혹은 이성적 판단을 지나치게 중시했던 고전주의에 항거하여 억제된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 및 자유와 본능적 의지를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 낭만주의라고 한다. 따라서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포함 맥주나 통기타도 낭만주의와 무관하진 않지만 낭만주의 그 자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낭만주의는 문학과 음악, 영화, 연극 등 예술뿐 아니라 정치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정치인중에서 프랑스혁명 때 현실주의 권력자 로비스 삐에르의 반혁명자 처형에 즉각 대응하지 않고 냉소적인 태도로 지켜만 보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당통'과 대한민국에서 '김구'까지도 어찌 보면 로맨티시즘에 다가선 인물들로 볼 수 있으리라.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손에 넣는 정치인은 이상적인 로멘티스트보다 대부분 냉정하고 계산적인 현실주의자였다. 당통과 김구는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얄퍅한 현실과 타협한 가벼운 속물적인 인물들이 아니었고 그러한 이유로 결국 현실주의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이 있다. 김구는 민족의 분단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을 만나러 38선을 넘었지만 결국은 자식 나이에 불과한 정치 능구렁이 김일성에게 이용만 당하고 돌아와서 최후를 맞이한다. 반면 이승만은 현실적인 승리자가 되기 위해 심하게 말하면 민족도 정의도 팔아먹고 권력을 손에 쥔 정치가였고 북의 김일성도 그와 비슷하였기에 지금까지 한반도가 반세기 이상 두 동강이 난 분단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의 두 사람 외에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포함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은 계산적인 현실주의자들이었지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열만 한 배포를 가진 로멘티스트는 아니었다고 본다. 역대 정치인들이 남북관계를 해왔던 걸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분단을 이용해서 미리 계산된 정치적 목적이나 도모했지 그 이상의 민족적 통합의 씨앗을 뿌리진 못했던 것이다.
고전주의나 현실주의 대비 로맨티시즘은 나름 이성과 현실의 차갑고 따분한 틀을 깨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는 장점과 함께 공상적으로 끝날 수 있는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꽉 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 남북통일과 같은 문제는 고전주의나 현실주의적인 대안만 가지고 해결될 기미가 암만해도 보이지 않는다. 이성적인 접근도 필요하지만 차라리 낭만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꿈같은 얘기지만 남과 북의 로멘티스트 정치인들이 모처에서 만나 분단의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북의 비인권적 통치 및 핵을 통한 협박 주의와 남쪽의 이기적 정치집단의 포퓰리즘을 뛰어넘는 뭔가 초현실적 해결이 있길 손 모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