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

by 최봉기

담배가 한반도에 들어온 건 임진왜란 때라고 하고 술은 그 이전부터 있어온 것 같다. 나는 어려서 친척 어른들이 집에 들러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드실 때 저런 걸 왜 할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어린 나이에 담배는 냄새도 고약하고 몸에도 안 좋다고 들었고 술도 몰래 먹어본 맛이 쓰기만 하였기에 왜 저런 걸 돈까지 들여서 소비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담배가 새마을(에서) 단오(날에) 청자(를 만나) 거북선(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개나리 (만발한), 한산도(에서) 명승(을 구경하고)에다 백자, 파고다, 한강 등이 있었고 그 후엔 환희, 수정, 솔, 거북선, 아리랑, 88, 한라산, 디스 등이 기억난다. 어릴 때 몰래 피워 본 담배의 맛은 썼었고 피운 후 입에 남아있는 냄새는 양치를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부친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술, 담배와는 일단 거리를 두며 지냈다.


10대 때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청소년들이 곳곳에 있었다. 주로 뒷골목 아니면 탁구장이나 독서실 옥상과 만화방. 만화방의 경우 전원 교복차림 흡연 모드로 밖에서 지나갈 때 굴뚝이 따로 없었다. 고3 때 밤 10시에 자습을 마치고 하교할 때 교복을 입은 채로 버스 뒤쪽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차에 탄 선생이 그 모습을 그대로 목격하고는 다음날 오전 일찍 그 친구에게 달려와서는 "이 새끼, 저 새끼"했던 일도 있었다. 그 친구는 현재 기장에 살며 커피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이며 어엿한 가장이다.


술의 경우 어린 시절엔 맥주라는 술은 지금과는 달리 꽤 귀한 술이어서 중산층의 경우 잔치 때나 등장했지 보통 때는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종류도 오비와 크라운 딱 둘. TV의 크라운맥주 광고가 다이빙대에서 점프를 해서 물로 첨벙 뛰어들어 잠수할 때 물아래가 맥주잔 속으로 바뀌고 그 안에서 수영하는 모습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야말로 낭만적이고 환상적이었던 광고로 기억된다.


당시 서민들은 막걸리를 즐겨 마셨는데 대개 주전자를 들고 구멍가게에 가서 막걸리를 사서 집에 오는데 막걸리 색깔이 우윳빛이어서 눈으로 볼 때 맛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77년도였나? 쌀농사가 잘 되어 그동안 금지되던 쌀먹걸리가 판매되었는데 일 년 후엔 농사가 잘 안 되어 다시 금지되기도 하였다. 당시 먹걸리는 약간 텁텁한 맛이었는데 사이다를 타서 '막사'로 마시면 요즈음 마트에 파는 장수막걸리 맛이 났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는데 청와대 막걸리는 능곡에 있는 어느 집에서 담아서 공급했다고 한다. 고인이 된 과거 공화당 예춘호 의원 말이 박통은 본래 소주나 막걸리만 마셨다는데 배우자가 별세한 후부터 회식장소에 양주와 요리사가 등장했다고 한다.


막걸리와 더불어 서민들이 애용했던 술이 소주. 당시 '진로'는 전국구였고 지역구 소주가 여럿 있었다. 무학 (경남), 대선 (부산), 금복주 (대구 경북), 경월(강원도), 보해(광주 전남), 보배(전북), 선양(대전 충남), 충북(충북 청주), 한라산(제주도). 현재는 17도 정도인 소주가 당시에는 25도였고 70년 초에는 30도였다고 한다. 25도 소주의 경우 한 병을 혼자 마시면 꽤 술이 센 편에 들어갔다.


70, 80년대 양주의 경우는 당시 기껏 들어 본 이름이 죠니워커 레드. 현재는 밸런타인, 로열살루트, 시바스리걸, 죠니워커 블루 등 다양한 양주가 있지만 당시 해외여행이 어렵던 시절, 해외에서 귀국하던 사람들이 몇 개 가져온 양주는 특급 선물이었다. 시중의 고급 술집에서 판매한 양주는 기껏 국산 양주로 베리나인, VIP, 패스포트 등.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술을 매우 즐겨 마셨던 사람들 같다.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할 것 없이, 또한 잔치 때나 귀한 손님이 올 때 빠짐없이 등장하였다. 비가 올 땐 술집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았고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도심지, 특히 명동엔 여러 문인들이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문학과 인생을 논하기도 하였다. 담배도 생활이 힘든 시절 특히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던 친구였다. 도시는 도시대로 다방에서 내뿜는 담배연기로 시골은 시골대로 논과 밭에서 일하다 중간중간에 숨 고르기를 할 때 담배 한 대씩 태우며 하루하루를 보내었다. 지금은 흡연이나 음주가 보편화되어 남녀 구분 없이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담배는 30년 전부터 피우지 않고 있고 술은 한주에 두어 번은 즐겨 마시고 있다. 과음 후엔 후유증이 있어 자제를 하지만 사는 과정이 어떨 땐 따분하고 허무하기도 하여 일시적인 해소의 대안이 그나마 술인데 술 외에도 좋은 대안이 많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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