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환장한 세상

by 최봉기

돈이 없이 허덕일 때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해결되리라 생각된다. 당장 끼니를 해결 못하는데 인격이니, 개성이니,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절이나 윤리나 도덕도 무의미하고 사회정의나 의리까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생존뿐이다. 생존의 처절함을 느껴보지 않았다면 삶 자체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생존이 보장될 때에야 인간은 비로소 멋을 내거나 점잖을 수도 있고 또한 남을 도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애수(Waterloo Bridge)'에서는 2차 대전 당시 사랑하는 사람의 전사 소식을 접한 한 여성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 그 후 역 광장에서 호객을 하다 우연히 살아서 돌아온 애인을 목격한 후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만나 죄책 감속에서 괴로워하다 워털루 다리 위에서 자신의 몸을 달려오던 트럭에 던진다. 그 여자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나는 배가 고팠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성서에서처럼 이 세상에서 과연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대한민국도 전쟁 때 처절했던 굶주림의 아픔을 겪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온 결과 지금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간단한 알바만으로도 먹는 건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처절했던 과거에서 탈피하여 멋과 품격을 갖추고 제대로 생활할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가난 후 찾아온 풍요로움 속에서 어찌 보면 인간은 그 갈구하던 돈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 인간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 되어버린 듯한 세상이다.


인격이나 학식이 없더라도 지갑 속에 돈이 두둑이 있다면 누구나 한턱 거하게 사며 부를 과시할 수 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등 계절별 먹거리와 참치 뱃살에 상어지느러미, 소의 등심과 안심 등을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점들이 널려 있다. 먹거리 외에도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만든 옷과 구두가 다운타운의 진열대에 전시되어 행인들의 넋을 빼앗는다. 그 외 고급스러운 집과 차에서 호화스러운 여행까지 인간을 유혹하는 물질적인 것들은 줄을 잇는다.


돈이란 건 이렇듯 달콤하고 흡입력이 강해 그 유혹을 이겨내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돈에 한번 빠지게 되면 인간의 눈빛이 탁해지고 보다 멋있고 근사한 걸 찾아 나서게 된다. 이런 사치와 욕심에 도취해 세상을 뒤흔들던 사건이 1982년 발생한 어음사기 사건이며 그 중심인물이 장영자였다. 권력을 사칭, 자금난을 겪던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몇 배 어음을 받아 할인, 약 6,400억 원 규모의 사기를 벌였다. 그녀가 하루 쓰고 다녔던 돈이 1천만 원이라 한다. 당시 대학 등록금이 20만원, 대기업 신입사원의 초봉이 20~30 만원이었으니 지금 가치로 하루에 1억은 쓰고 다녔던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면 거짓말을 잘하고 진실성이 없다고 나온다.


최근 영부인의 옷과 장식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개인 돈인지 나라 돈인지는 보지 않아서 모른다. 어찌 보면 그건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도 있다. 100개가 넘는 옷에 수십 개의 장식품을 치장해야 위신이 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인간은 머리나 가슴이 텅 빌수록 겉치레를 요란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여론은 옷값에 들어간 돈의 정체를 밝히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대부분 국민은 영부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처절했던 궁핍함을 넘어서서 드디어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세상이 돈에 의해 정신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사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의식주를 해결한 다음 여행하고 취미를 즐길 정도면 행복하다 할 수 있다. 그 이상 돈은 냉정하게 말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비싼 등심 대신 삼겹살 먹고 김치찌개를 먹으면서도 무한한 행복과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아낀 돈은 아직 끼니 해결이 어려운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을 때 그 기쁨은 배가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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