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롯데시네마, CGV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최신 영화를 일정 기간 상영을 하고 상영이 종료된 영화는 유료로 가정에서 TV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시내의 극장들은 일류, 이류, 삼류로 나뉘어 있었고 상영하는 영화의 종류와 극장 시설 및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부산의 경우 남포동, 광복동에 부영, 국도, 제일 등 일류 극장이 모여 있었는데 아직 국도와 제일의 위치가 헷갈린다. 부영에 가까웠던 게 국도였던가? 일류 극장에서 본 영화로는 '007 문 레이크, '자이언트', '챔프',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엔드리스 러브', '지크프리트' 등이 있다.
어린 시절엔 별로 돈이 없어 명절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류 극장을 가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집 근처 컴컴한 실내가 마치 창고 같던 천보, 국제 등 2본 동시 상영 극장들을 애용하였다. 극장 1층에는 흑백 사진으로 된 영화의 장면이 붙어 있었고 2, 3층에 관람석, 3층 끝에 영사실이 있었다. 영사실은 문이 닫혀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영사기 빛이 나오는 작은 유리창엔 늘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한 번씩 필름이 끊어지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3류 극장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에도 미성년자를 입장시켰고 이로 인해 어릴 적 '19금 영화'를 보며 조금 일찍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영화가 1971년에 개봉된 '한 많은 두 여인'이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 윤희(윤정희 분)는 남편 문식 (남궁원), 아들 (김정훈 분)과 행복하게 살아간다. 남편은 여고 교사이지만 6.25 때 월남한 혈혈단신으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부유한 가정의 윤희 부모는 결혼을 반대했고 결혼 후 친정아버지(김희갑 분)는 딸을 외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말도 없이 외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희정 (남정임 분)이란 여인과 간통 혐의로 체포되는데 경찰과 함께 현장을 덮친 건 바로 희정의 남편 태수 (박노식 분)이었다. 전쟁 전에 희정과 문식은 황해도에서 죽도록 사랑하던 연인 관계였고 전쟁으로 문식이 의용대에 끌려 가자 혹여나 그를 만날까 월남한 희정은 문식의 전사 소식을 접하고 태식의 재취로 들어간다. 태수는 여고생 딸 (전영 선분)이 있었고 이 딸의 담임선생이 문식이었기에 문식과 희정은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연인과 현재의 아내로 만난 '한 많은 두 여인'의 운명은 과연..? 이 영화는 상영 후 TV 방영이나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아 보기 힘든 영화가 되었다. 베드신도 없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간통죄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개봉 당시 '19금'이었다.
또한 어릴 땐 최고 인기를 끌었던 영화가 중국 영화. 왕우의 '외팔이 검객', '외팔이 드라곤' 등 외팔이 시리즈에 로례의 '철인', 꽝 따이 주연 영화과 더불어 이소룡 주연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맹룡과강. 이소룡 영화에 등장했던 쌍절권은 학교 주변 가게에서 판매하였고 어린이들은 쌍절권에 검은색 테이프를 둘둘 감아서 손으로 돌리면서 괴성을 내며 이소룡 따라 하기 경쟁을 벌였다(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참고).
국내 영화 중에서도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에로틱 영화보다 박노식, 장동휘, 허장강, 독고성, 황해, 이대근 등이 출연했던 액션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팔도 사나이', '김두한' 등 영화였다. 박노식은 검은색 가죽장갑을 끼고 나와 상대편 건달들을 수십 명씩 제압하였고 허장강, 독고성은 악역의 대명사였다. 박노식과 두 악역 배우는 자식들이 대를 이어 연기를 하고 있다.
또 다른 테마가 괴기 영화로 '드라큘라 백작' , '오멘', '엑소시스트' 등 외국 영화와 '옥녀의 한' 등 국내 영화였는데 밤중에 화장실 갈 땐 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 오싹오싹해지기도 하였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늘 보여 주던 것이 '대한뉴스'와 정책 홍보용 영화였는데 75년 말에 사회문제화되었던 '대마초' 관련 영상물을 본 기억도 있다. 대한뉴스에서는 TV 화면에서 흑백으로 보던 스포츠를 칼라로 볼 수 있었는데 수십 배는 멋져 보였다. TV로 정기 한일전 축구시합을 볼 때 유니폼 색깔이 구분이 안 되어 답답하고 따분했지만 실제 칼라 화면으로 보니 한국팀은 빨간색, 일본팀은 푸른색이었던 기억도 있다.
세상이 바뀌어 3류 극장은 시골에서 조차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영화를 싸게 보려 조조할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과거에 싸구려 가격으로 허름한 극장에서 2본 동시 상영을 볼 때 가졌던 기쁨도 마치 쇠로 된 도시락을 책가방에서 꺼내 먹던 것과 같은 아득한 정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