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부분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난방비라는 게 관리비에 포함되어 가스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낸다. 고층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서울 부산 등 대도시 경관이 달라지기 전까지 주택가라는 곳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었고 여름과 겨울을 보내는 일이 현재보다는 훨씬 어려웠다.
아파트 이전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난방을 하는 데 사용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연탄이었다. 따라서 월동준비에도 연탄이 필수 품목이었다. 요즈음에도 찬 바람이 불면 흐름 한 주택의 노인분들에게 연탄을 전해 주며 봉사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자녀들 연령대는 연탄을 과연 알긴 할까 궁금하다. 구멍이 아홉이라 연탄을 구공탄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흐린 날이면 어김없이 연탄가스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여 연탄보일러가 등장했다.
연탄은 용도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방을 데우는 아궁 이용, 또 하나는 음식 만드는 주방용이었다. 싱크대가 나오기 전에는 부엌에서 연탄 위에 국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밥도 하였다. 연탄과 석쇠로 구운 생선이나 돼지고기 맛은 프라이팬으로 가스 위에 구운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을에 어머니가 전갱이를 사 와 연탄 위 석쇠에 구웠는데 기름기 때문에 불이 붙던 기억도 있는데 그 고소했던 맛을 이제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연탄에서 구운 생선 맛을 보러 몇 년 전 부산 미화당 백화점 뒷골목 고갈비집을 간 적이 있는데 과거 서민의 향수가 묻어 있던 고갈비집들은 거의 없어지고 딱 두 군데가 남았는데 내부도 지저분할 뿐 아니라 이젠 연탄 대신 가스로 구워 옛날 맛을 느낄 수도 없었을뿐더러 가격은 삼겹살보다 더 비쌌다. 과거에는 고갈비 한 마리에 몇백 원씩 하며 싸고 맛있어 돼지고기조차 먹기 부담되던 학생 포함 주머니가 얇던 사람들에겐 하늘이 내린 음식이었다.
포장마차에서도 곰장어나, 돼지고기 등 이런저런 안주를 연탄에 즉석으로 구워 소주랑 먹던 기억도 아른거린다. 겨울에 길이 미끄러울 때 부수어 길가에 뿌려진 색깔 바래진 연탄재는 미끄러움 방지에 특효약이었다. 그런 연탄을 이제는 볼 일이 없어져 아쉽기도 하다.
추운 겨울 연탄을 넣은 난로에 연결된 연통에 손을 올리던 추억도 떠오른다. 요즈음 겨울과는 비교도 안 되리만큼 추웠던 그 시절 늘 외풍이 들어오던 환경에서 겨울을 보냈지만 연탄아궁이로 데운 따뜻한 방구들을 서로 차지하려 하던 일도 이제는 저 먼 나라 얘기가 되어 버렸다.
부유한 집이야 과거에도 기름보일러와 가스레인지를 사용했고 양주도 즐겼지만 서민들의 애틋한 온기와 정감을 느끼려면 양주보다 소주였고 기름보다 연탄이 제격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해주기 위해 노랗게 산화도 하고 미끄러운 눈길에서는 부서지며 자신을 던지던 연탄을 소재로 한 시로 연탄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한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