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별 문제가 안 되지만 과거에는 마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분 뛰어넘기이다. 조선시대 때에는 신분이란 게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엄격하여 구분되어 있었고 태어나면서 부모의 신분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는 면천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상대로 공을 세운 경우 노비 등 천민의 신분을 벗어나게 해 준 것이다. 이러한 예외를 제외하면 소위 말해서 '쌍것'은 양반에게 대들지도 못하는 것이 그 시대의 현실이었다. 구한말 의병운동을 할 때에 천민이 양반에게 대어 들다가 죽임을 당한 기록까지 있다.
춘향전이란 소설에 나오는 이몽룡은 양반, 성춘향은 천민은 아닌 양인이었지만 의관, 역관 등 중인보다 못한 기생의 딸이었다. 따라서 양반이 기생의 딸을 데리고 놀거나 첩으로 두는 정도면 몰라도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일은 그야말로 상상 속의 일 아니었을까? 춘향전에서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려 했기에 당시엔 현실이 아닌 꿈과 같은 일이었고 따라서 작자명을 제시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서울 뚝배기'(1990.7~1991.9 방영)란 드라마에서는 시골에서 농고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설렁탕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만봉(최수종 분)이 식당 주인의 딸 혜경 (도지원 분)과 서로 좋아 지내는데 현실적으로 식당 주인(오지명 분)의 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혜경은 안정된 가정의 예쁜 외동딸이고 만봉이는 가진 것도 없이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생활을 하지만 극 중에서 비치는 모습은 정신이 올곧고 경우 바른 데다 성실하며 일도 잘하는 청년이었다. 게다가 남자답고 불의에 맞설 줄 아는 내면적인 멋을 가진 성격으로 집안 형편상 교육은 못 받았지만 대졸자와 비교해도 손색없다는 주변의 평을 받기도 한다.
만봉도 자신의 형편이 혜경과 결혼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단념을 하며 식당을 나와 공사판에서 일한다. 그 후 유학 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러 공사 현장에 찾아온 혜경은 만봉에게 자신을 지금까지 한 번도 진실하게 사랑한 적이 없었는지 물어보며 흐느끼자 만봉은 그다음 날 공항에 나가 혜경의 출국을 막고 청혼을 한다. 결국 식당 주인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서울 뚝배기 식당의 지배인이 되는 걸로 끝나는 스토리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말이 있다. 미천한 신분의 여자가 높은 신분 남자를 만나 팔자 고치는 경우를 말한다. 여자들은 그 말을 바꿔서 '바보온달 콤플렉스'라고 응수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신분제도는 없어졌지만 평등해진 세상에서도 가정형편이 너무 차이가 날 경우 교제는 몰라도 결혼까지 골인하기는 어려운데 설령 결혼을 할 경우에도 끝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재벌가와 평범한 집안간의 결혼을 들 수 있다. 얼마 전 장안의 화제가 된 경우는 재벌가 딸이 자신의 경호 책임자와 좋아하게 되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는데 자식까지 낳고 재산 문제로 이혼을 하기도 하였다.
이십 대 때에는 순수한 사랑만으로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인간은 결국 이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사는 존재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춘향전이 실제 있었던 얘기인지 허구적인 것인지 모르지만 남녀 공히 참된 사랑의 가치를 신분 혹은 가정형편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지켜 나간다면 그러한 변수들은 넘지 못할 장벽은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