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귀가 아프게 들었던 '반공'이나 '멸공'이란 말을 떠올리니 왠지 생소한 느낌이 든다. 이승만이나 김구와 같은 역대 정치인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승만은 말 많고 탈 많던 남한만의 총선거를 치르며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지식인들은 공산주의 신봉자가 많았는데 그 이유가 첫째 그들이 저항했던 일본이 자본주의 체제였기에 그 체제에 맞서는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산주의였던 것이고, 둘째 지식인들 생각에 자본주의는 소수의 자본가들만을 위한 체제이고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는 착취당하며 소외되는 불평등한 제도이므로 머지않아 혁명에 의해 사라지리라 믿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처음에는 이를 크게 환영했던 게 북한이었고 미국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 이유가 박정희는 과거 남로당 소속 간부였고 여수 순천 사건 때 사형을 당할 뻔 한 전력도 있어 친북적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은 최고의장 박정희에게 밀사를 보낸다. 그 밀사가 좌익으로 대구 폭동 때 경찰서를 습격하다 총 맞아 죽은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친구 공산주의자 황태성이었다. 황태성은 월북,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었는데 박정희가 그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고민할 때 이후락은 박정희에게 그를 제거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인 빌미가 되어 정체성이 흔들리고 권력기반이 약화되므로 강단을 내려야 한다고 밀어붙여 황태성은 결국 사형을 당하고 그 이후 남북관계는 냉랭해졌다.
박정희는 혁명공약으로 반공을 국시로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 이유는 미국의 지지와 국민들의 공감 위에서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효과면에서 가성비가 최고였던 초중고를 중심으로 한 반공 교육과 반공 캠페인에 목숨을 건다. 대표적인 연례행사가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불렀던 노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 이제야 빛내리 이나라 이계 레"와 더불어 대포와 피란 행렬 동영상. 이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보여 주며 공산주의란 말만 나오면 치를 떨게 하여 반공만이 살길이란 등식을 자연스레 이끌어낸 것이다.
그밖에 북에서 내려온 귀순자들의 인터뷰 및 소감 발표가 있었다. 고1 때 월요일 첫 교시 시험 후 귀순자 한 명이 방송실에서 약 1시간 동안 북의 실상과 남에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말솜씨가 유창했고 중간중간 유모어도 곁들이며 고교생들을 쥐락펴락했다. 자신이 남에 내려와서 방송에서 '프로헤파룸 골드 (간장약)'과 '펩시콜라' 광고를 접했을 때 남한은 못살다 보니 해파리도 잡아먹고 볍씨를 주워 먹는 줄 알았다고 했다. 또한 북에서는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시아버지 동무',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며느리 동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부친에게 했더니 부친은 그렇진 않을 거라 하셨다. 또한 북한은 전시에 대비하여 남한보다 지하도를 훨씬 깊게 건설했다고 하며 반공의식을 고취시켰는데 내뱉었던 말 중 일부는 과장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했던 말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동행했던 정보부 요원에 의해 녹음되었다.
이와 반대로 북에서도 남에서 북으로 귀순한 사람이 나와 귀순 동기와 소감을 발표하는 일이 똑같이 있었다. 어느 잡지에 재독 한국 정치학자가 기고한 글에는 5공 때 자신이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이남을 탈출하여 북으로 갔던 한 사람이 북한 TV에 나와 전두환과 남한 체제를 호되게 욕했다고 한다.
이렇듯 남과 북의 관계란 것이 북한은 남한을 미제 국주의자의 하수인으로 남한은 북한을 공산괴뢰정권으로 칭하며 줄곧 비난해왔다. 지금은 반공이나 멸공이란 말은 잘 들리지 않고 북의 핵실험 관련 기사가 지면을 대신 채우고 있다.
나라가 힘이 없어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해방 후에도 똑같이 힘이 없어 한 민족이 새로운 강대국에 의해 국토가 두 동강 난지도 7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권력을 쥔 남과 북의 통치자들은 대의를 위해 눈앞의 이익을 내려놓기보다 이념을 이용하여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작태를 보였다. 학창 시절 우리가 받았던 반공 교육도 그 일환이었으며 위정자들은 이를 통해 꽤 짭짤한 재미를 봤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입맛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