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갖는 생업의 종류는 무수히 많은데 생활상의 차이로 인해 없어진 직업도 있고 새로 생긴 직업도 있다. 과거 일제 강점기였던 1938년 '박향림'이란 여가수가 불렀던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가요가 있다. '풍각쟁이'란 시장이나 집을 돌며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그런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노래의 가사는 오빠가 맛있는 걸 다 빼앗아가고 맛없는 것만 내어놓는 딴따라(풍각쟁이) 같은 심술쟁이에 트집쟁이라고 비꼬 우는 내용이다.
우리가 어릴 때 공원에 가면 사진을 찍어주고 인화하여 집으로 보내주고 돈을 받던 사진사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과거에 귀하던 카메라가 어느새 보편화되며 어느 순간 사라진 직업이 되어버렸다.
또 하나 사라진 직업은 과거 재래식 화장실이 없어지다 보니 시청 위생과 소속 일용직 아저씨들의 일자리가 어느새 사라졌다. 한때 위생용 트럭이 길가에 세워지면 통 두 개를 나무에 하나씩 걸쳐 메고 좁은 골목을 능숙하게 활보하던 아저씨들이 보였는데 모르긴 해도 가정의 가장들이라 생각되는데 불평 없이 일하던 모습이 그리 천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일하던 중간중간 골목 한편에서 솔이나 거북선 대신에 청자나 은하수와 같은 담배를 태우던 모습도 눈에 어른거린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주변에서는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한 가장이 낮, 밤 가리지 않고 자제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 후 배우자나 자식을 상습적으로 구타했는데 그런 가장과 비교해 볼 때 위생과의 일용 직분들은 비록 초라해 보일지언정 선량하고 나름 책임감도 있는 가장이었던 것 같다.
버스의 출입문이 자동화되기 이전에 고속버스나 시내버스에는 안내양 혹은 차장들이 있었다. 고속버스 안내양은 비교적 외모나 몸매도 준수하고 학력도 고졸 이상이었던 반면 시내버스의 경우 야간 여상 등에 재학 중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 또순이 차장들은 만원 버스에서 버스의 문을 몸으로 밀어붙이는 등 여자라기보단 남과 여 중간의 또 다른 성 같았다. 간혹 등하교 시간에는 버스에서 남학생들과 시비가 붙기도 했는데 일진 정도가 아니라면 이들과 맞서는 일도 쉽지 않았을 듯싶다.
야구장에도 사라진 직업이 있다. 고교 야구의 경우 시합 전 사이렌이 울렸고 타자가 나오면 "*번 타자 라이트필더 김**"처럼 소개해 주는 장내 아나운서의 예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이제는 들리지 않고 전광판의 글씨가 이를 대신한다.
이럴 듯 세상은 갈수록 인간들이 하던 일을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해 주며 편리하게 바뀌어 가지만 이러한 변화란 게 과연 환영만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우선 인간의 일자리가 하나씩 없어지게 된다. 또한 백화점이나 마트의 정찰제와 과거 재래시장의 "골라 봐" 내지 부르는 게 값이던 시절을 비교하면 인간의 체취를 느끼기가 어렵다. 콩나물 가격을 몇십 원 깎고 사과 하나를 바구니에 더 넣고 하는 게 어느덧 사라져 버렸지만 어찌 보면 이런 게 샘이고 또한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닌지? 어른들을 따라 재래시장에 갔을 때 기억으로는 요리조리 즉흥적으로 이유를 대며 흥정도 하고 배짱도 튕기는 걸 보며 사는 법도 배웠던 것 같다.
과거 택시로 이동할 경우 택시 기사들의 사회 만평 관련 입담은 어지간한 언론인 수준은 되지 않았나 싶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식견도 차에 탔던 이 사람 저 사람 경험하면서 오랫동안 축적되어 따라가기 어려웠다. 향후 자율주행차가 일반화되어 혼자 쓸쓸히 목적지로 갈 경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함께 인간적인 대화를 나눌 일은 갈수록 적어질 것 같다. 인공지능으로 '대화기'라는 것도 개발될지 모르지만 어디 구수하고 훈훈한 인간의 입담을 따라올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