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월남전에 대한 기억

by 최봉기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부에 위치한 나라 베트남(인구 약 9,700만, 1인당 명목 GDP 약 3,500불)은 라오스, 캄보디아 및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국의 오랜 지배를 받은 다음 10세기 초~ 19세기 독자적인 왕조를 이어왔다. 그 후 프랑스 지배를 받고 1945년 독립, 다시 남북으로 분단 후 1960~1975 베트남 전쟁을 치르며 결국 국가통일을 이루어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손을 떼자 공산주의 월맹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하여 전쟁이 발발한 것에 대해 전 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은 우호세력이 필요했고 과거 한국전쟁 때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미국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대한민국은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요청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치뤄야 할 희생이 만만치 않았지만 경제적, 국방적인 이점을 고려해 깊은 고심을 하였다. 대한민국이 월남전 참전으로 벌어들인 경제적 이득은 50억 불에 이르렀는데 이는 한일협상 시 대일청구권 8억 불의 6배가 넘었다.


대한민국 군대는 1965~73 동안 처음엔 의무대 등 비전투 부대를 보내다 맹호, 청룡 부대 등 전투부대를 파병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개인적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친척은 없었지만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가서 친구 삼촌이 월남에서 군복 입고 야자수 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중학교나 고교 시절 은사들 중 간혹 월남전에 참전한 분이 있었는데 어떤 분은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것들을 직접 들려주기도 하였다. 그중에 끔찍한 얘기도 있었는데 죽은 베트콩 신체의 특정 부위를 잘라 목걸이로 메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군인만 나타나면 다들 출행랑을 쳤다는데 그것은 한국 군인이 하나라도 베트남 마을에서 사망할 경우 그 마을 사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씨를 말렸다고 한다.


처음 베트남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전력상 몇 개월 이내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리라 다들 예상하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밀림 지대의 게릴라전이라는 것은 화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군 비행기가 암만 융단폭격을 퍼부어도 밀림 속 몇백 km씩 이어진 지하 땅굴은 늘 안전했고 물자나 병력은 땅굴로 교묘하게 이동하였다. 미군에 쫓겨 도주하던 베트콩이 밀림 속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추면 추적이 어려웠다. 또한 베트남인은 이념을 떠나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민족지도자 호찌민을 중심으로 조국 통일을 위해 남녀노소가 똘똘 뭉쳐 저항을 했던 것이다. 그밖에 당시 사이공 시 곳곳에는 수만 명의 월맹 스파이가 심어져 있어 주요 군사정보는 불과 몇 시간이면 하노이의 월맹 본부로 날아갔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베트남에서 백기를 들고 철수하게 되었는데 보트피플 일부가 당시 내가 살던 부산에 몇 개월 머무르기도 했다. 부산에 그들이 머물렀던 곳은 폐교였는데 그들이 수재민들처럼 지내던 모습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TV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당시 방송에서는 공산화되면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하며 반공교육을 했는데 월남해서 남한에 정착했던 나의 부친은 '공산화'라 하여도 국가의 역사로 보면 엄연한 통일이라고 말씀하셨다.


1974년 공산화라는 시각을 달리 해석했던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란 책은 금서가 되었고 1988년 나온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저)에서 베트남전을 비슷한 시각에서 재조명하였다.


베트남전의 경우 여러 영화가 나름 주제를 달리해 제작되었는데 가장 끔찍했던 영화가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 주연 '디어 헌터'였다. 당시 중학생이던 친구 하나는 몇 번 그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다가 쫓겨났는데 당시 미성년자들은 절대 입장을 시켜주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는 사람으로 도박을 하는 '러시안룰렛'이 나온다. 전쟁이란 상황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내팽겨지고 인간의 생명이 마치 짐승이나 벌레처럼 추락하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2014년에 나온 황정민, 김윤진 주연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때 월남한 주인공 덕수가 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 전쟁 중인 베트남에 갔다 다리 부상을 당하고 귀국하는 내용도 있다.


고인이 된 하일성 해설위원은 과거에 싸움질하며 하도 말썽을 피워 직업 군인이던 부친이 인간 되어 오라고 월남전에 보냈는데 혹 베트콩에게 잡히면 목숨 값으로 쓰라고 달러를 한 움큼 쥐어 주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국군은 총 30만 명인데 이중 사망, 실종한 자의 수는 5천 명 정도라 한다. 실종자 중 일부는 베트콩에게 잡혀 생고생을 한 후 목숨을 건지는 유일한 옵션으로 북한행을 제시받았다. 북한에 도착하면 포로였단 말은 입밖에도 내지 못한 채 전쟁터에서 북한을 동경해 탈출했다고 인민들 앞에서 허위로 귀순 신고를 하고 북한 시민으로 사는데 탈북자들이 그러한 소식을 전해주어 가족들이 죽은 줄만 알았던 참전자의 소식을 알게 되는 일도 있었다.


이상 한국전이 휴전된 12년 후 발발하여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종전된 베트남 전쟁에 관한 기억을 스케치해 보았다. 베트남과 대한민국은 과거 약소국이다 보니 강대국 지배도 받고 처참한 전쟁도 겪었던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을 굴복시킨 지구 상의 유일한 나라가 베트남이라고 한다. 우리는 미국과 우방으로 지금껏 잘 지내왔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베트남처럼 어느 분야 혹은 어떤 형태라도 미국을 굴복시킬 날이 오길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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