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이 처녀를 또한 처녀가 총각을 찾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노처녀 사감처럼 위선이거나 결벽증이 있는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또한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만나 애정행각을 벌인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1950년대 중반에 한 남자가 1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70명 여성을 상대로 벌인 성추문 사건이 발생하였다. 법정에서 피고는 70명 중 처녀는 단 1명이었다고 진술하였다. 검사는 '혼인빙자 간음'이라 주장했지만 1심은 "법은 정숙하고 순결한 여인의 정조만 보호한다"라고 하여 무죄를 선고, 공무원 사칭만을 적용, 벌금형을 적용했다가 2심, 3심에서 1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세상의 남자나 여자들 중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독신주의자들이 있다. 일부는 눈이 턱없이 높거나 아니면 결혼할 만큼 경제적 능력이 없을 수도 있고 혹은 성기능 장애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천주교 성직자, 불교 수도승과 같은 종교인과 더불어 건강하고 경제적 능력도 있지만 가정이란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종교계나 문화계의 독신자들을 떠올려보면 고인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 김옥길 총장 등이며 생존자 중에서는 이해인 수녀와 김동길 교수가 있다. 나 자신은 결혼 전까지 약 삼십 년을 홀로 지냈고 그 후로도 독신으로 살아본 적은 없어서 독신주의자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김동길 교수는 토크쇼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이유 중 하나로 과거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교도소에서 한방에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데 자기 이외의 다른 수감자들은 다들 가장인 자신들이 격리되어 지내는 동안 자녀 학비나 가족 생활비 등 가족들 걱정을 했다고 하는데 자신은 혼자만 챙기면 되기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천주교 신부들 중에서 독신생활을 하다 간혹 신부복을 벗는 경우가 있다. 어느 수녀분께서 자신의 대학원 동창 신부 얘길 했던 적이 있다. 두 명의 신학박사인 신부에게 어느 날 그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여자가 나타나 불현듯 성직자 생활을 접게 되었는데 그 후 경제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되지 않자 일방적으로 이혼을 당해 오갈 데 없는 거지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사제들은 미사복을 입고 강론할 때는 지적이고 멋있어 보일는지 모르지만 성당을 벗어나면 한마디로 무능력자이다 보니 집에서 담배만 피우고 한숨만 쉬며 지내다 채여 버렸다고 한다. 동창들이 다시 성직자로 돌아오라 했더니 양심상 그러진 못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적 욕구는 자녀를 낳아 가족을 형성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달리 보면 평생토록 인간을 괴롭히는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간혹 성적인 욕구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할 경우에는 성희롱 등 비정상적인 일탈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사실 가정이 있는 경우라도 성적인 욕구가 완전히 해소되는 건 아니다. 여성도 생리기간을 포함 권태기에 폐경기까지 올 경우 성관계를 피하려 한다. 이럴 경우엔 기혼자나 독신자나 별 차이는 없다. 단지 자신 외에 가족이 있어 덜 외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인간은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지나 노년이 된다. 독신주의일 경우 젊을 땐 건강하고 경제적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면 골 아픈 가정사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인생을 마음껏 즐기며 자유롭게 맘에 드는 이성과 교제도 하다 권태로울 땐 체인징 파트너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나이가 많아지면 이따금씩 만나던 이성도 한 명씩 떨어져 나가며 평생 반려자가 되긴 어려워진다. 또한 건강에 문제라도 생길 경우엔 돌봐줄 이도 없으니 결국 혼자서 비애감만 커질 것이다. 대학 때 잠시 만난 한 여자는 독신이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런 생각은 젊을 때 한때 가질 수 있는 철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최근에는 과거 전통적인 가정과 달리 결혼 후에도 교육비 부담 등으로 자녀를 갖지 않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남녀 독신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싱글들이 함께 가족처럼 지내는 식의 공동주거도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대안도 가정을 대신하진 못할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엔 사내만 하나 낳아 세 가족 가정을 이루는 친구들이 많다. 나는 아들만 낳아 키우며 세 가족 가정으로 살다 마흔이 되어 늦둥이 딸을 가져 네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딸이 생일 때나 어버이날에 써서 보내준 편지를 읽으면 남다른 교감을 느끼며 주책 넘게도 딸을 하나 더 낳을 걸 싶기도 하다. 갑자기 "아무리 누추해도 집만 한 곳은 없다"는 속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