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 (부친과 모친)

by 최봉기

아침에 해가 뜨면 세상은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해가 지면 달이 뜨고 하늘엔 별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한 가정에서 해는 가장인 아버지, 달은 어머니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해가 없는 밤엔 달이 해를 대신하게 된다. 나는 3남 1녀인 가정의 둘째로 태어났는데 해이 신 아버지는 연세가 구순이 될 때까지 약사로서 한 가지 일을 계속해오셨고 달이신 어머니는 늘 가정을 지켜오셨다. 나의 가정은 늘 해가 하늘에 떠있었기에 대신 달의 존재에 크게 의존한 적은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 가장은 환갑 가까이 되면 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부친은 삼십 년을 더 일하시다 보니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꽤 안정적인 편이었다. 간혹 가장이 세상을 빨리 떠나거나 조기에 회사를 그만둘 경우 혹은 하던 사업이 기우는 경우 가정엔 큰 우환이 온다. 특히 자녀들이 아직 완전한 성인이 되기 전에 해인 가장이 그리 될 경우 달인 안주인이 직업전선에 나가 가장의 역할을 하거나 장남 혹은 장녀가 모친을 도와 준가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수 양희은의 경우 부모가 어려서 이혼을 하고 시내에서 양장점을 하던 모친이 보증을 잘못 섰다 집안이 급격히 기울자 장녀로서 가장의 역할을 맡아서 했던 일이 명동에서 노래하는 일이었다. 노래도 취미로 하는 노래와 달리 생활을 하기 위해 하는 노래는 처절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당시엔 무명가수였기에 송창식의 도움으로 송창식이 노래하는 시간의 일부를 대신했고 사정이 어려워 가불까지 받으며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름이 알려져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 가수 양희은이 되게 된 것이었다.


내 주변의 한 친구는 어릴 적부터 부친이 다니던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나와서 집에서 놀며 지내셨는데 모친이 대신 직업전선에 나가 가장 역할을 하셨다. 중소기업에서 생산한 전기 프라이팬이나 전기장판 등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판매하는 일이었다. 아마도 어떨 땐 문전박대도 받고 스트레스도 많았을 텐데 꾹 참고 불철주야로 일을 하시면서 결국 두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고 큰 아들은 치과의사가 되었다. 친구 모친은 교육을 제대로 받진 못한 분이셨지만 두뇌가 좋으셨다고 하는데 의사가 된 그 친구는 모친을 닮아 어릴 적부터 공부를 아주 잘했다. 그 모친은 평소 그 친구에게 "내가 고생하며 일하는 것이 너를 키워 얻어먹으려는 게 아니고 내가 공부로 못 푼 한을 네한테서 푸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한마디로 똑똑한 자식 하나 보고 평생을 참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육십여 년을 살면서 솔직히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 따라서 힘든 처지의 사람이 겪는 고충을 잘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살면서 주위에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곤 했다. 살아온 환경이 너무 힘든 사람들 중엔 교활하거나 거짓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등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최소한 그런 말은 듣지 않고 살았다. 그 점에서 나는 해나 달과 같으신 부친과 모친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술과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