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성찰

by 최봉기

요즈음 세상엔 남들에 관한 정보나 가십거리가 흘러넘친다. 가만히 있으면 심심한지 "누구가 뭐 했다더라.", "누구누구 이혼한다더라." 등의 뉴스가 그러하다. 기자들 특히 연예부 기자들은 그런 이슈를 파고들어 기사를 써내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어떤 낌새가 보이면 가만있질 않는다. 어떤 경우엔 당사자가 일부러 스캔덜을 만드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럼으로써 일반인들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스스로 끌어올리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라고 한다. 미담보다 추문의 경우 또한 유명인사일수록 전파속도에는 가속도가 붙고 확장 효과도 더욱 큰 게 사실이다. 단순 사실에 주관과 상상까지 겹쳐 하나의 소설 작품이 거창하게 완성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를 생각해본다. 첫째,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성공이 어려우니까 유명해진 사람이 추락할 경우 마치 반대로 자신의 위상이 올라가 버린듯한 '착시현상'을 유발한다. 둘째,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 갈수록 적어지고 늘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보단 남의 일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또한 자신이 아닌 남이 주체가 되고 그것이 거울이 되어 그 거울로 자신을 보게 되는 '거울효과'가 생기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심화될 경우 인생의 주연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 되어버리고 '대리운전'이란 말이 인생에 결합되어 '대리인생'이 되어버릴까 두렵다.


'자기 성찰' 이란 테마가 나오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 집에 내려와 쉬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곤 하였다. '백범일지', '소유냐 존재냐?', '어린 왕자' , '민중과 지식인' 등. 그리곤 책을 펼치며 범일동 부산시민회관 입구 옆 난간에 앉아 있는데 노인 한분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자네는 자신이 몇 개라고 생각하는가?"

"두 개요."

"왜 두 개인가?"

"영혼과 육신 둘 아닌가요?"

"자신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는데 둘이라고 하는 건 대답 자체가 틀렸네. 학교나 책에서 가르쳐주는 것은 주로 남들에 관한 것들인데 정작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은 가르쳐 주지 않네."

"그럼 그런 건 어디서 배우나요."

"나한테 오면 가르쳐 주지"

그리고는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노인의 눈빛은 마치 태양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사실 그 노인이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잠시 나눈 대화 때 가졌던 느낌은 아직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있다.


후 이런저런 책을 읽고 뭔가 삶의 해답을 찾아보려 애는 썼지만 나 자신에 관한 이해의 수준은 어린애 정도에 불과한 듯하고 늘 남 얘기나 하며 사는 자신이 창피하고도 한탄스럽다. 단지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것이 고작 내 머리에 있는 나 자신에 관한 이해의 전부이다.


우리는 태어나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들이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하는 것이라기 보단 사회에서 거의 공식화되어 있는 것들을 쫓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 진학, 전공선택, 취업, 결혼 등. 개중에는 대학에 들어갔다 중퇴하는 사람, 전공을 바꾸는 사람, 취업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 결혼했다 이혼하여 혼자 살거나 재혼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퇴한 사람 중 제대로 졸업한 사람보다 훨씬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 인물이 소설가 이문열. 이문열은 사법고시도 도전해 본 적 있지만 결국 소설가로서 살면서 남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의 작품들을 내어놓고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산다. 이런 시쳇말로 실패자라 할 수 있는 중도 탈락자들이 제2의 성공을 이루는 것은 깊은 자기 성찰 때문이 아닐까?


교육 등 사회의 제반 제도들은 자기 성찰까지 도와주진 못한다. 단지 버스처럼 같이 동승한 사람들을 정해진 목적지에 내려주기만 하는 기성복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따라서 한번 더 자신의 체격과 개성에 맞춰 제단을 할 때 제대로 폼나는 양복이 제작될 수 있다.


또한 인생은 그다지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 삶 속에는 여러 가지의 역경도 있다. 야구경기와 삶은 여러 유사한 측면이 있다. 야구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두 번씩 또는 그 이상의 고비가 찾아온다. 그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할 때 패배하게 된다. 훌륭한 투수일수록 평범한 투수와 달라 자신만이 가진 비장의 무기란 게 있다. 어떤 고비는 빠른 공으로 또 어떤 고비는 변화구로, 어떤 고비는 머리로 또 어떤 고비는 배짱으로 넘길 때 비로소 승리를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신들만의 무기는 끝없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나오는 것이겠지만 그 이전에 분명히 거쳤을 또 하나의 과정이 있다. 그것은 혹독한 '자기 성찰'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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