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물이라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성적 욕구도 가지고 있다. 짐승도 어느 정도의 지능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떤 원숭이는 죽어있는 새를 보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짐승들도 지내들끼리 소리를 통해 신호를 보내며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 중 하나로 '자살'을 말하기도 한다. 짐승들은 자살을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태어나서 먹고 자며 살다가 늙어 수명이 다하면 세상을 떠나게 되는게 짐승이다. 자살이 마치 인간만이 가진 특권인양 얘기하면 문제가 있겠지만 짐승이 할 수 없는 판단과 선택이란 점은 진정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의식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던 시절 배부르고 등따신 날을 꿈꾸며 살았다. 그때는 자살율이 지금처럼 높진 않았던 것 같다. 어찌보면 자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헐벗고 굶주릴 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일을 하게 되고 일을 한 후 휴식을 취하고 또 일하는 식의 다람쥐 쳇바퀴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궁핍하여 의식주 해결이 지상과제였지 정신적 만족을 통한 행복의 추구나 자아의 실현 등은 배부른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통해 생활수준이 갈수록 올라가고 밥굶는 사람은 드디어 사라졌다. 그러자 과거에 생각할 수 없던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자살율이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2021년 7월31일 기준 대한민국의 자살율은 세계 1위로 10만명당 28.3명이 자살하는 걸로 나온다. 2018년 기준 하루 평균 24.6명이 자살하며 OECD 평균 11.3명의 2배를 넘어섰다. 또한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살로 인한 사망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을 제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삶의 만족도 관련 눈높이는 올라가는데 그 정도를 따라가지 못함으로 인한 상실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절대적 빈곤'보다 무섭고 답이 없는게 '상대적 박탈감' 아닐까?
과거에 비해 세상이 확실히 바뀌긴 많이 바뀌었다. 결혼연령이 과거보다 10년은 늦어졌고 인젠 '올드미스'란 말은 의미 자체가 없다. 마흔살이 되어 겨우 결혼 하거나 쉰살에도 싱글인 경우가 더러 있다. 과거에 상식이던 일과 지금의 그것은 분명히 다르건만 그래도 별탈없이 세상이 굴러가는 걸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질 경우 사는 모습이 좀 더 파격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과거엔 상상 못했던 일들이 펼쳐진다.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면 과거에는 살며 부대끼며 자신의 참모습을 느끼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보며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 교실에 예슨명씩 있는 교실에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부대끼던 70년대 시절을 경험하긴 힘들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간혹 tv드라마나 개그콘서트 혹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 시절은 그 시절이고 지금은 지금인 것이다. 그때의 향수만을 그리워하며 살 순 없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바뀌었고 과거의 것들을 고집할 이유는 없지만 현재의 새로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리석어 보일진 몰라도 과거의 것들에서 해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현재 우리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을 벗어나 먹는 것과 입는 것도 취향과 개성에 맞춰 먹고 입음으로써 그 만족도가 상상할 수 없이 커졌는데 그 사실을 예찬하고 감사할 순 없을까? 인간의 욕구가 끝이 없어 더 좋고 더 황홀한 것을 끝없이 추구해서 병이 생겼다면 일부러라도 과거로 돌아가 한번씩은 끼니를 거르며 허기를 잔뜩 느껴보는 건 어떨까? 또한 고급 외제차를 몰며 승차감을 극대화시키지만 말고 한번씩은 걸어 다녀도 봄으로써 반대로 우리 다리의 고마움을 극대화시켜 보는건 어떨까?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그려보며 현재속에서 번민만 하지 말고 선명하게 보이는 과거의 발자취를 하나씩 들추며 현재의 존재감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할 수 있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