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때 가졌던 생각들을 예순 가까이 되는 지금 나이에 한 번씩 떠올려보면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그때 무척 멋있고 대단해 보이던 존재들이 지금은 어떨 땐 실망스럽고 어떨 땐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대상 중 하나는 이지적으로 보이던 또래의 한 여성이었으며 또 하나는 지적인 멋을 풍기던 한 명사였다.
총각시절에는 화장을 하고 멋을 부린 여성은 화장실도 안 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남자 앞에서는 온갖 고상을 떨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허영을 만족시켜 줄 백마 탄 기사와 같은 누구를 학수고대하는 것 같다. 한때 알고 지내던 또래의 한 여성은 당시 내 현실적 여건이 내키지 않았는지 하이에나처럼 갑자기 모습을 바꾸며 내 앞에서 슬며시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시간이 한참 지나 둘 다 가정을 가진 중년이 되었을 때 우연챦게 전화번호를 알게 되어 연락을 해본 적이 있었다. 과거 나앞에서 당당한 척하더니 내가 "얼굴 한번 보자"라고 넌지시 말을 던졌더니 기겁을 하였다. 자신이 떳떳한 처신을 하지 못하고 거짓말까지 하며 오래도록 이어지던 관계를 내팽개치고 달아났으니 나 앞에야 당당히 나타나지 못했겠지만 만일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했다면 어찌할 바 모를 두려움도 있었을 터이다. 여자도 여자 나름이겠지만 이렇듯 이중적이고 말과 행동이 순식간에 달라지는 상대에게 한때 그토록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비상식적인 열정을 가졌는지 생각해보면 갑자기 서글퍼진다. 일관성이 있고 당당함이라도 있었다면 인연은 안 되었을지언정 나름 추억 속 애절함이라도 있었으련만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기가 왠지 싫어진다. 앞으로 어디서든 마주칠 일은 없길 바란다.
과거 우러러 보이던 명사들의 경우 상당수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고령인 관계로 TV 토크쇼나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보기가 어렵다. 지적인 욕구가 왕성했던 젊은 시절 마음속으로 꽤 존경했던 명사들은 현재 인생의 황혼기에 있으며 아직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오래전 과거 정치적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고고함과 청초함을 지켜왔던 한 지식인은 더 이상 과거의 강직함과 흔들림 없는 위용을 보여주지는 못한 체 살고 있다. 세월과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게 인간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십 대와 쉰, 예순은 연륜으로 볼 때 어린애와 어른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물의 나이는 아직 삶을 균형적으로 통찰할 정도의 성숙함에 도달하지 못하고 주로 책과 사색을 통해 단면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기에 현실과 유리된 이상 속에서 몸부림치는 나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젊음의 순수함과 열정 위에서 경험이 쌓이고 현실에 대한 이해도 생기며 정신적으로 원숙해지는 것 아닐까? 만일 이십 대 때 그런 순수함도 없이 현실 속에서 답이 보이는 것에만 도전하며 계산적인 삶을 추구했다고 한다면 예순이 아닌 칠순이 되어도 마음속 깊이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눈물도 없이 멋도 개성도 없는 얄퍅한 삶의 경험자로 살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