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으로 고생하는 소중한 지인 한 명이 술 관련 에피소드를 메들리로 써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 자신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지 않고 술을 마시되 두주불사형은 아니어 망설여지지만 요청자가 현재 병치레 중이어서 예의상 한편은 글로 올려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인생은 이성만으로 감당하기엔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않고 시시 때때 답답하거나 괴로운 일들이 생기는 반면 즐겁고 기쁜 일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삶 자체의 성격으로 술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친숙해 있다. 술이 몸에 들어가면 우울함과 슬픔이 일시적이나마 사라지는 듯하고 기쁘거나 반가울 땐 그러한 감정이 배가되는 듯하기도 하니 약한 마약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마시던 막걸리는 우윳빛이었고 몰래 한 번씩 맛을 보면 씁쓸하기만 했는데 저걸 뭐 맛있다고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 고교시절 소풍 여행 때 끽연과 음주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고 나 자신도 한 번씩 흉내를 내어 보곤 하였다. 중2 때 호기심에 몇몇 친구들이랑 댓 병에 막걸리를 받아 와서 어두침침한 방에서 홀짝홀짝 마신 적이 있었는데 술맛이 뭔지도 모르는 그때 술맛을 처음 경험한 것 같다. 약간 아딸딸함을 느끼며 당시 과외 수업하는 방에 앉아 있는데 과외 선생은 얼굴이 벌거스럼 하고 술 냄새가 조금 났던 우리를 보고는 모른 체하고 수업을 했던 것 같다. 그때 술 동지들이 불량 청소년은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가 준 것 같다. 혹 나무랄 경우 갑자기 수입에 지장이 있을까 봐 그런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간섭 없이 술과 담배를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술 관련 첫 이색적인 기억이 고등학교 동문 신입생 환영회였다. 그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술 고문을 처음으로 경험. 둘러앉은 선배들에게 당시만 해도 지금 약 17도 소주와 다른 25도의 독한 소주를 한잔씩 올리고 자신은 선배 수만큼 받아 마시는 죽음의 행진. 선배들은 신입생 후배들을 일단 술로 군기를 잡았다. 나의 경우 술 경험이 없이 돌아가며 주는 술잔을 받아서 마시곤 화장실 가서는 여러 번 올리고 나서 또 마시고는 인사불성 한 채 숙소로 갔는데 술로 지친 몸으로 잠을 자다 뭔지 느낌이 이상해서 주변을 보니 이불 주변이 한바다. 몸속에 남아있던 알코올 잔량이 수면 중 입 밖으로 나오며 이불을 마구 적셨던 기가 막힌 경험.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여성들의 첫 생리가 연상되는 에피소드였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것도 얄궂으면서도 때 묻지 않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고려대 입학한 친구들의 환영회는 짜장면 곱빼기 큰 사발에 고대의 상징이었던 막걸리를 가득 채워 원샷으로 마시는 거였다. 선배들의 감시하에 마구 입속으로 막걸리를 빠른 속도로 한방에 쏟아붓는데 어느 시점이 되면 목안에 들어간 술이 입 밖으로 일시에 튀어나오며 아수라장이 되는 게 전통적인 고대 버전 신입생 환영회. 고대에서 82년도 동문 술자리가 있던 술집에 한 남자가 쫓겨 급히 문을 열며 뛰어 들어왔고 이어 다른 남자 하나가 그를 잡으러 뛰어 들어왔다. 그 둘은 데모하다 쫓긴 학생과 짭세. 그때 최고 고참 선배가 "전부 소주병 하나씩 손에 들고일어나!"라고 하자 짭세는 겁을 먹고 튀어 도망간 일화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해 현재와 같은 삼겹살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안주였고 주로 동태찌개 등 국물 안주 하나를 시켜 몇 이서 숟가락으로 퍼먹던 시절. 소주는 빨리 없어지는데 안주를 좀 오랫동안 먹기 위해 두부나 생선은 눈치껏 조금씩 덜어 앞접시로 가져가야 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는 노래방이란 게 없어 술 먹고 취기가 돌면 앉아서 돌아가면서 노래 한곡씩 부르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 정도 소음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술꾼들은 1차로 끝나지 않는다. 과거 학창 시절엔 1차 소주, 2차 입가심 맥주, 그다음 3차로 학교 주변 '매미 집'이란 곳까지 술자리가 이어지곤 했다. 지금은 사라진 예전 매미 집이란 곳은 팁 없이 대학생들보다 대개 몇 살 위로 보이는 여자들이 앉아 함께 맥주를 잔에 부어주는 곳이었다.
세계적으로 술을 허가 없이 먹지 못 먹게 하는 나라들이 간혹 있다고 한다. 중동의 경우 회교국가들이 종교적 이유로 혹은 더운 날씨에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리한다는데 한국인들이 그 나라에서 술을 먹으려 할 경우 '음주 허가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술 정도는 어느 나라에서나 성인들에게 허용되어 있다. 술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쉽게 구입해서 마시고 있으며 술로 인한 폐해 또한 많다. 나의 경우 한때 20대 중반에 미국에서 몇 가지 개인적인 문제로 무척이나 괴로울 때가 있어 며칠을 혼자 신음하다 아는 선배 집에 그것도 늦은 시간에 찾아갔다. 그 선배는 나의 괴로운 모습을 보더니 술을 가져왔는데 그때 들어간 술이 문제를 일으켰다. 술이 오르며 나도 모르게 사이다 컵에 40도 양주를 부어 원샷. 그 후 깨어보니 쨍쨍한 햇살 아래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속은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고 머리는 구멍이 난 것 같았다. 그 후에 전해 들은 얘기는 그 선배가 오물을 치우느라 무척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더 많기에 이리도 동서고금, 남녀노소 (소년소녀 제외) 관계없이 즐겨 마시게 되는 게 술이라고 생각된다.
술은 특히 음악인, 미술가를 포함, 소설가, 시인들이 밥만큼 즐기는 음식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면 감성적 활동이 활발해지고 예술적 영감이 생기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술과 안주를 재미있게 노래한 유명한 가곡이 있다. '명태'.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을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소설가 중 술독에 빠져 글을 썼던 사람이 이외수. 젊을 때 글을 쓰며 엄청 폭주를 했던 사람이 이문열. 예술가나 문인 말고 스포츠맨들 중에도 두주불사로 유명했던 사람이 인제는 고인이 된 야구인 김동엽과 하일성. 농구인 신동파와 박한 등.
마지막으로 술을 떠올리면 우리 삶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술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늘 함께 해 왔다. 기쁨이 넘칠 때도 슬프거나 괴로울 때에도 늘 한결같이 친구가 되어주고 동반자가 되어준 것이 술. 인간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성을 너무 확신할 경우 오만해지기도 하고 얼음처럼 차가워지기도 한다. 마음속에 자기보다 좀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게 해 주기도 하고 따뜻한 인간애를 느끼게 해주기도 하는 술. 그 폐해에도 불구하고 냉혹하고 피곤한 삶 속에서 위로자, 동반자가 되어 주기도 하는 술과 더불어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면 갈수록 삭막하고 이기적이고 험악해지는 이 세상에도 가끔은 훈훈한 사람 냄새가 나고 자살자도 조금은 줄 수 있으리라 생각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