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인간들의 복리와 편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거꾸로 인간 위에 군림하기도 하며 여차할 땐 인간을 아예 집어삼켜버리기도 하는 '돈'이란 괴물에 대해 스케치해 보겠다. 과거 신분제 하 전통 계급주의 사회에서는 상거래를 통해 돈 버는 일에 종사했던 상인들은 역관이나 의관들과 함께 양반 아래 중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사회와 국가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는가 하는 것도 인간의 삶을 거의 좌지우지할 정도로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돈의 위세가 어쩌다 이리 높아지게 되었을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는 지금과는 생활수준이 비교가 되지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때만 해도 인간들이 제정신을 가지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즉 암만 돈이 좋은 것이라도 인간은 그 위에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그때는 다들 부족하게 살았어도 어려운 생활 속에서 힘들게 돈을 모은 사람들 가운데는 그래도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 자기 돈을 내어놓는 미담이 전해지곤 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미담 중 하나는 조그마한 식당을 하며 겨우 생활하는 중년 여성이 자신이 조금씩 모아 저축한 돈을 대학에 합격해 놓고도 등록금이 없어 끙끙대던 청년에게 선뜻 내놓던 경우였다. 당시 라디오에서 인터뷰했던 내용이 "요사이 대학 입학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요? 하지만 공부에도 때가 있는데 공부를 돈 때문에 못 해서야 되겠어요"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돈이 인간보다 더 대단한 지위를 갖게 되었을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만 그때는 다들 어려웠고 여유 있는 사람이 일부였기에 늘 아끼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던 '아나바다' 생활을 하였다. 나는 70년대 때의 생활은 초등학교 때부터 직접 경험을 하여 이해를 한다. 어릴 적 우리 집에 TV가 없던 때 내가 살던 동네에 TV가 있던 집이 두 집이었는데 프로레슬링 중계가 있던 날 고인이 된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 쇼를 보기 위해 그 두 집 중 하나에 애들이 초저녁부터 옹기종기 모여들곤 하였다. 당시 그 동네엔 자가용이 있는 집은 없었고 아래 동네에 딱 한집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더욱 형편없던 생활에 관한 얘기는 당시의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시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가 '마부(1961)'와 '오발탄(1961)'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개인 소득이 나날이 증가하며 다들 없어서 못 먹고 못 입던 때의 생활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과거 집 주변에서 무리를 지어 식사 때면 밥 좀 달하고 애원하던 거지 아저씨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부턴 슬슬 '인간 냄새'가 사라지고 그 대신 새로운 냄새가 등장하였다. 그것이 바로 '돈 냄새'였다. 즉 모든 기준이 인간에서 돈으로 바뀌어졌다. 다시 말해 돈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 위로 올라오며 돈이 곧 능력이고 품위일 뿐 아니라 인격이요 또한 기품이 되어 버렸다. 또한 삶의 수단이었던 돈이 인제는 목적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어지기도 하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라는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은 돈도 아니고 밥도 아니다. 그것은 공기이다. 하지만 공기의 소중함은 너무 쉽게 망각되고 또한 당연시되어 버린다. 공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의식주, 즉 밥이요 옷이요 집이다. 그 정도가 해결된 다음에 찾는 것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다음은 남 앞에서 자기의 존재를 보여주고 싶어 지며 존경도 받고 싶어 지게 된다. 인제는 다 됐구나 싶지만 암만 남들이 인정해주고 부러워하더라도 자신이 그것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스스로의 만족 즉 '자아실현'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정신적인 만족 혹은 자아실현의 영역에 '부의 창출'을 포함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하고 반박을 해보지만 그 판단도 그리 단순하진 않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 의식주를 해결하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는 행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돈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돈 관련 욕심은 끝이 없다. 또한 돈이 많아질수록 인간 본연의 감사하던 마음이 갑자기 탐욕과 오만 또는 독선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돈을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버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얻어진 돈만큼 사회나 자신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1982년 희대의 어음사기사건을 경험하였다. 그 주인공은 장모 여인. 당시 그녀가 하루에 뿌리고 다녔던 돈이 1억. 그녀는 사치에 빠져 사기를 치고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닐 때 생기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고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독선과 오만, 그러면서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자신은 피해자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주변 환경에 잘못이 있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한다. 한마디로 인간이 만든 돈이 인간 위에 군림하며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들고 삼켜버렸던 예가 아닐까?
이밖에 내가 간접적으로 경험한 하나의 예가 또 있다. 어느 중소기업 사장 한분이 70년대부터 여기저기서 돈을 사채로 끌어모아 그걸로 부동산을 구입하였고 재산이 나날이 불어나 수십억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땀을 흘리지 않고 모은 돈이라 그런지 그 돈으로 술집이나 다방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상대로 돈을 뿌리며 졸지에 수십 개나 되는 가정을 거느린 가장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그가 노년이 되자 돈은 있고 그 돈 냄새를 맡고 곁에 머무는 사람들은 많았겠지만 정작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들로부터는 외면을 당하게 되었다. 이 또한 제정신을 잃고 돈에 의해서 인간이 망가진 사례가 아닐까?
내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김소운 선생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란 수필이 기억난다. 그 시절 먹을 반찬이 없어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를 차려놓고 '황후의 밥과 걸인의 찬'이란 글을 남편의 밥상 위에 남기고 외출한 한 여성의 마음을 가슴 깊이 음미해 보자.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부와 일치하진 않는다"라는 말은 결코 진부한 일편 경구만은 아니다."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