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79년에 18년간 철권통치를 했던 대통령이 눈을 감았고 80년엔 시국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런 이유로 수학여행의 날짜가 5월이 지나 교복이 동복에서 하복으로 바뀌고 나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는 날 약간 비도 내렸는데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속도를 내며 동해안을 거슬러 울진의 쌍룡굴에 도착. 우리는 국토지리 시간에 배운 석회암 동굴 구경을 하러 줄을 서있던 중 인솔교사와 매표소 직원 간에 시비가 붙더니 고성이 오가며 전군에 회군 명령(?)이 떨어졌다. 그때 구경 못한 쌍룡굴을 15년 이상 지나 결혼하고 가족들과 함께 가서 보았다.
그리고 이동하여 강릉의 오죽헌에 가서 율곡의 생가를 둘러보고는 속초 입구 낙산사에 도착. 낙산 해수욕장엔 당시 배를 탈 수 있어 몇몇이 배에서 사진도 찍었다. 당시 낙산사는 주변 바다 경치야 좋았지만 지금처럼 주변 암자들이 많지 않아 약간 초라했던 관광지로 기억.
그리고 설악동 여관으로 이동. 여관에 도착하여 첫 저녁식사를 하는데 반찬이 형편없었다. 그러자 먼저 투숙하게 된 학교의 학생들이 반찬의 질에 불만을 제기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건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죄다 땅바닥에 부으며 식사를 거부. 그러자 온갖 종업원이 모여 치우느라 진 땀. 그 후로 반찬이 좀 나아졌고 덕분에 우린 좀 더 나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는 특히 고등학생들의 경우 잘 길들여져 있어 수준 이하의 대접을 해줘도 별 항의 없이 넘어간다고 넘겨짚고 장사를 했고 그러다 예상 못하게 큰 코 다친 여관 당국. 수학여행 때 단체를 확보하기 위해 여관들은 교장 등 키맨을 상대로 봉투를 하나 쥐어주는 게 관례. 그 다음 인솔교사들에게 첫날 저녁에 회식을 시켜주는 게 전부. 하지만 학생들은 호구라 반찬 포함 모든 게 엉망.
하루를 여관에서 묵고 본격적인 설악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백담사 등 내설악이 아닌 외설악을 관광코스로 하여 신흥사에 집결한 후 비선대를 지나 비룡폭포까지 이동. 도심지에서 갑갑하게 살다 공기 맑고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 이르자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 십 대의 우리들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계곡물에 뛰어들기도 했고 저녁엔 못 먹는 술도 마셨고 구름과자를 흡입하기도 했다. 저녁엔 그룹사운드 동기들이 숨겨가져 온 드럼과 전자기타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광란의 분위기(영화 '신라의 달밤' 참고).
이상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스케치하였다. 여러 수학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이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젠 완전한 성인은 아니지만 준성인으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할 때이며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찬 때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때엔 신체의 에너지도 넘치고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강할 때이기도 하다. 닫혀있는 문 건너편의 세상 즉 여성들의 규방생활을 영화나 책 등을 통해 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데 특히 입시 준비로 인해 이성교제란 자연스러운 일이 마치 죄악시되고 반쪽 생활을 하면서도 그게 지극히 정상인 듯 생활했던 그 시절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참고) 암만 봐도 인생이란 육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무인도와 같은 곳에서 생활했던 때였던 양 뇌리에 남아 있다. 그 섬엔 사람 냄새도 나지 않고 혼자 헤엄을 쳐선 빠져나갈 수 없어 3년여의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육지에서 데리러 오는 배를 묵묵히 기다리며 지내던 때가 그때가 아니었는지 자문해본다. 공감하는 분들은 길이나 지하철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조금만 참고 가다려. 곧 데리러 올게"라는 사랑의 메시지를 눈으로 전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