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관한 추억

by 최봉기

내가 처음 경험했던 여행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로 갔던 수학여행이었다. 부산역에서 동해남부선 완행을 타고 창밖의 해운대와 송정, 일광을 지나 천년의 고도 경주에 도착했는데 첫날 불국사를 지나 최고 난코스였던 석굴암을 둘러보았다. 담임선생님은 미리 어려운 코스라는 걸 알고 우리 반 8반을 일부러 선두에 세워 출발하였다. 그 이유 가 뒤에서 다른 반을 쫓아서 걸어갈 경우 더욱 힘들다는 것. 역시 연륜을 갖춘 엘리트 교사 다웠던 발상이었다. 기차 출발 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기차 멀미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멀미약을 준비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실수로 멀미약 대신 소화제를 주게 되었다. 그리고 도착 후 확인했더니 약을 잘못 먹고도 멀미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 그 이유는 약을 먹었으니 멀미를 안 할 것이란 심리적 안정감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중학교 2학년 때엔 부산 촌놈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새벽에 부산역 을 출발하여 완행열차로 서울역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5~6시경. 그 지겨운 노정을 마냥 즐거운 맘으로 갈 수 있었던 건 10대 때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서울구경이었다는 점. 서울역 광장 앞에서 보였던 큰 건물이 대우빌딩. 그 뒤쪽 집창촌 한가운데 싼 값의 여관을 정해 형편없는 식사를 했던 당시였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 어린 나이에 그 주변이 유명한 사창가 양동이란 사실도 몰랐고 서울 구경한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내내 들뜨기만 했었다. 창경원, 여의도 국회 의사당, 판문점, 북악 스카이웨이 등을 구경하며 다시 기차로 내려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은 설악산. 부산에서 보지 못했던 높은 산들과 계곡을 대하자 일부 흥분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친구들은 비룡폭포에서 교복을 입은 채 차가운 물에 풍덩~~. 당시 선생님 한분은 몸이 젖은 친구 하나에게 기싸대기를 한방 날리기도 했다. 그때의 천진난만함을 이젠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때 풍덩했던 한 친구는 20대 때 입대 하루 전 철길을 지나다 기차 사고로 사망하기도 하였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늘 마음을 부풀게 했고 비록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이긴 했지만 주변의 어른들은 잘 놀고 오라며 여비를 듬뿍 주기도 하였으며 지금은 느낄 수 없는 풋과일 맛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곤 성인이 되어 83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여행한 곳이 남해의 상주해수욕장. 한참 물놀이하며 노는데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실제 상황입니다~~" 다름 아닌 이웅평이 북한에서 전투기를 몰고 월남했던 사건.


한참 후 1991년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 (MBA)를 마치고 귀국할 때 파리에 친구 한 명이 유학 중이라 유럽여행을 하게 되었다. 유럽은 각 국가들이 이웃처럼 붙어 있어 기차로 국경을 넘게 되어 있었다. Euro Trail Ways라는 기차표를 보름치로 끊어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스위스, 스페인의 유럽 7개국 주요 도시를 여행하였다. 난생처음 가보던 유럽이라 무척 설렘도 있었지만 여기저기 소매치기, 절도범들이 영업활동을 하던 지저분한 곳이기도 하였다.


가본 곳 중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도시가

오스트리아의 짤스부르그, 이태리의 로마와 베니스. 환상적인 경험 중 하나는 5월 말 로마에서 반팔을 입고 밤차로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를 가다 갑자기 새벽에 기온이 떨어진 듯하여 커튼을 열어보니 눈에 덮인 높은 산들 사이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 여비가 충분치 못해 기차 여행 시에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밤차를 애용했는데 밤에 자고 있을 때 국경 통과 시 승무원이 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야간열차로 이동이 어려운 경우 유스호스텔이나 저렴한 호텔을 한 번씩 이용하기도.


지금까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행했던 기억을 스케치해 보았다. 인생이란 것이 어찌 보면 긴 여행인지도 모른다. 늘 한 곳에 있는 사람은 드물어 학교나 직장 등 각각 사정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추억이 생기기도 한다. 인제는 해외의 경우도 지구촌이라고 하며 국경의 개념이 허물어져 버리기도 하였다.


사는 동안 마치 여행을 하듯 멋진 추억을 남긴 후 눈을 감게 될 때 수목장이나 납골당에 "고 최봉기 님 1964년 4월 16일 태어나 멋진 여행을 마친 후 20**년 *월*일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떠남"이라고 적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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