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과 인생

by 최봉기

육상에서 순발력이 뛰어난 경우 100m 달리기, 지구력이 좋은 경우는 마라톤 선수가 된다. 단거리 선수는 100m 세계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처럼 체격이 건장하고 상체에도 근육이 많고 키도 클 경우 파워가 붙어 경쟁에서 유리하다. 반면 마라톤 선수들은 42.5km 거리를 완주하려면 몸에 꼭 필요한 살 외에는 짐이 되기에 황영조나 이봉주와 같이 살이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거리의 승부를 들여다보면 시작부터 중간까지는 일단 스타트를 잘해서 치고 나가야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순발력과 또 다른 단거리의 지구력이 승부를 좌우한다. 이를 뚝심이라고도 한다. 중간 이후의 뚝심이 없으면 그전까지 선두를 유지했을 경우라도 처질 수밖에 없다. 우사인 볼트는 처음 스타트 때는 별로지만 어느 지점부터 무섭게 치고 나가서 중반 이후에는 늘 선두를 유지하는 놀라운 뚝심을 늘 보여왔다.


마라톤은 단거리에 비해 스타트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인생이란 마라톤은 초반 스타트도 나름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초반에 너무 잘 나가는 경우 자칫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초반에 이런저런 고생을 하다 중반 이후부터 일이 잘 풀리는 경우가 전체로 보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초반에 너무 잘 나가면 종착점까지 아직 갈길이 구만리이지만 마치 계속 승승장구할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초심을 잃고 승리감에 도취해 자만할 경우 주변의 상황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질이나 하다 거센 파도를 만날 경우 좌초될 수도 있다. 반면 초반에 실패도 겪으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서 성공에 골인할 경우 어지간한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이미 고인이 되신 삼성, 현대 창립자 이병철, 정주영 회장도 사업 초창기부터 그리 된 건 아니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던 조그만 회사의 사장이었고 크고 작은 실패도 많이 했다. 그러다 회사의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지명도가 생기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뚝심으로 세계적인 대기업의 입지를 굳혀왔다. 만일 이 두 창립자가 젊은 시절 처음부터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면 남들 앞에서 우쭐대다 잊혔을지도 모른다.


운동선수나 연예인들 중에서도 무명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목받지 못하고 계속 벤치워머로 있다가 자신에게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홈런을 쳐 감독 눈에 들며 스타가 된 선수가 김재박이다. 박철순이란 스타도 대학 2학년 때까지 계속 후보로 지내다 암만해도 비전이 보이지 않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 호된 훈련을 받던 중 후임으로 입대했던 왕년의 야구스타 남우식에게 자존심을 굽히며 자신을 지도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여 특별 지도를 받았고 늦게 야구에 눈을 뜨면서 그때부터 정상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왔다.


대한민국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의 경우도 나이 마흔까지 지방 공연을 다니며 사회나 보던 삼류 연예인이었다. TV 출연을 하러 오디션에 여러 번 나갔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는데 이유는 혐오감을 주는 얼굴이라 방송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이리역 폭발사고로 유명 연예인을 구해주며 주변의 도움으로 드디어 TV에 출연했고 그 이후로 계속 승승장구하였다.


이상으로 기업가, 야구선수, 연예인의

성공스토리를 마라톤에 대비해 보았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젊은 시절엔 대스타 클라크 게이블이 잘 나갈 때 이름도 없던 이류 영화배우였다. 초반에 일이 잘 풀린다고 자만해도, 잘 안 된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해도 안 되는 게 인생이란 마라톤 경기이다.


고인이 된 야구해설가 하일성이 했던 얘기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이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야구경기에서도 9회 말 투아웃까지는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경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포기하거나 속단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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