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강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약자 앞에서만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약한 경우가 꽤 많다. 한마디로 '强弱弱강'이다. 어찌 보면 실속형으로 보이지만 비굴해 보이기도 한다. 반면 간혹 꼴통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强强弱약'으로 반대의 입장을 보인다. 강한 자앞에서는 다른 사람들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서서는 할 얘기를 다 하지만, 약한 자를 상대로 위세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 인간적으로 내면적인 멋이 있는 스타일이다. 또한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약간 이상주의에 가깝다. 후자인 强强弱弱형은 눈앞의 개인적인 이득보다는 크고 의로운 일을 추구하다 보니 주로 소시민인 일반 사람들로서는 이해 못 할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기 할 말을 하던 스승이 한분 계셨는데 한참 전에 고인이 되신 나의 중3 때 담임이셨다.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셨던 교사들 말에 의하면 "여러분 담임선생님은 정말 대단해요. 교무실에서 일어나 얘길 하면 교장, 교감도 꼼짝 못 해요." 그 시절, 즉 지금보다 못살던 때에는 자신의 줏대가 있던 분들이 지금보다는 많았던 것 같다. 먹고 살만할수록 의로운 것보단 이로운 것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 권위적인 3공, 5공 체제하에서 강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다 불이익과 고문 그리고 의문사까지 당했던 사람이 있다. 3 공화국 때 '사상계' 대표를 지냈던 장준하는 박정권 때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정치권에서 강한 견제를 받았다. 그 와중에 등산 갔다 터무니없게도 의문사를 당했다. 장준하의 장례식장에서 대한민국 제1호 여성 인권 변호사 이태영이 미망인에게 "남편 없이 애들이랑 살려면 막막하겠네"라고 하자 "이이는 그전에도 집에 생활비 제대로 가져온 적이 거의 없었네요"라고 했다. 늘 큰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일은 등한시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의 자식도 취업을 하려고 입사원서를 넣으면 중앙정보부에서 집요하게 방해 작업을 함에 따라 가족들도 갖은 고생을 하였다.
또한 5 공화국 때 반정부 인물로 낙인찍혀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던 인물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전 국회의원 김근태이다. 영화 '남영동 1984'를 보면 그때의 일을 상세히 볼 수 있다. 그는 민주화 정부에서 장관도 지냈는데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빨리 떠나게 되었다.
이상 절대 강자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다 갖은 고초를 겪었던 두 인물의 삶을 재조명하였다. 강자 앞에서 약한 척이라도 했다면 그다지 살벌한 시련은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들은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사회와 민족의 미래를 고민했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가족이 현실적으로 끼니를 힘들어할 때 가장이었던 이들은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