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에 관하여

by 최봉기

융통성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하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무능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나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대학 때 관공서에 볼 일이 있어 갔는데 마감이 몇 분 지난 시간이었다. 담당자는 젊은 여자였는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뭔가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땐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마감 후 업무수당(?)을 주면 일을 처리해 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순진하게도 약간 늦긴 했지만 해달라고 했더니 완강히 거절을 했다. 결국 하루 지나 다시 가서 일을 처리하였다.


이러한 경우가 융통성과 관련된 상황일 수 있다. 우직하게 원칙만 우길 경우 답이 없다. 물론 담당자의 태도가 옳은 건 더욱 아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시간 내에 일은 처리해야 하는데 원칙을 따지다 보면 답이 없고 하루를 지체할 경우 일처리가 더뎌 무능하다는 소릴 들을 수 있다. 따라서 변형된 원칙이 나오는 것이다. 원칙이 중요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100% 원칙대로만 되지는 않기에 법을 교묘히 피하는 '탈법'처럼 '탈원칙'도 나오고 '선의의 거짓말'도 수시로 등장하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 군에서 세상 사는 요령을 터득한다고 한다. 우선 더러운 걸 참는 인내를 배운다. 또한 군이란 곳은 규정과 원칙이 엄격한 곳이지만 온갖 종류의 탈원칙이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다. 복무 기간 동안 군에서 관행화된 '가라(가짜)'를 다양하게 터득한다. 또한 속된 말로 '짜웅'이란 게 있다. 윗사람에게 뇌물을 바치거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잽싸게 눈치로 알아채어 비위를 맞추고 점수를 따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다. 군에서는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융통성이란 걸 정의하면 규정대로만 일을 하다 한계에 부딪힐 경우 법적인 저촉을 받지 않는 선에서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수완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원칙의 중요성을 모른 채 편법만 동원할 경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가 군대를 가기 전 대학원을 다닐 때 같은 학교에 해병대를 제대했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내가 당시 병역을 마치지 않았기에 나앞에만 오면 군대 얘길 하며 늘 유세를 떨었다. "남자는 군대를 가야 인간이 돼. 안 되면 되게 하라."라며 날뛰었다. 내가 한 번은 뭘 깜빡하고 못 챙겨 왔다고 하길래 "군대 한번 더 갔다 오셔야 겠네"란 말을 했더니 투덜거렸다.


그러다 해병대를 오래전에 제대했다는 한 사람이 그 사람 얘길 듣고 한번 보러 왔다. 그리곤 해병대 얘길 나누더니 뭔지 의심에 찬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인상을 쓰며 해병대 군가를 불러보라 하여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부른 군가가 죄다 해군 군가였다. 잠시 후 "이 세끼! 너 해병대 안 갔다 왔지. 죽을래?"라고 하며 "꺼져!"라고 하자 해병대 나왔다고 까불던 사람은 겁에 질려 자기 방으로 갔다. 그러자 "저 세끼 해병대 출신 아니야. 해병대 출신이면 곤조가 있어서 "너만 해병대냐 나도 해병대야"라고 하며 붙자고 한다""라고 하였다. 잠시 후 자기 방에 갔던 그 사람을 오라 해서 한방을 날리며 "똑바로 얘기해 너 해군에 있었지"라고 했다. 그 일 이후 나앞에서 군대로 유세 부리던 그 사람은 군대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융통성 얘길 하면서 해병대 얘기까지 해버렸는데 편법도 그 속에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탄로 나서 망신당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군대도 다녀왔고 직장생활도 해 봤는데 융통성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성향 자체가 융통성 운운하며 거짓말을 곧장 해대는 속물들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원칙을 위한 원칙을 주장하거나 문제 해결 능력은 없으면서 원칙만 신봉해도 갑갑하지만 자기 필요할 때만 융통성을 들먹이며 원칙을 무시한 채 편법만 찾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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