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by 최봉기

인간이 근본적으로 선한지 아니면 악한 지에 대해 동양에서는 공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오랜 세월 극과 극의 주장으로 존재해 왔다. 또한 성서에는 아담, 하와가 죽음, 질병, 고통이 없는 에덴동산에서 걱정 없이 지내다 악마인 뱀의 "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된다"는 속임수에 넘어가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악에 물들어 낙원을 쫓겨났다고 한다. 이러한 선과 악을 둘러싼 도덕관, 종교관과 함께 인간의 윤리 문제는 과연 인간이 이성을 가진 정신적 존재인지 혹은 진화로 발전한 단순 고등동물인지의 판단에 있어서도 중요한 근거가 되리라 생각된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인류의 역사가 평화 혹은 화합이 아닌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도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현재도 평화가 온전히 정착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구 상의 어떤 국가도 전쟁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사태가 발발할 경우 인간들 간의 살상이 정당화되며 인간의 존엄성은 순식간 짓밟혀 인간이란 존재가 짐승과 별반 다를 바 없어진다.


이에 반해 인간이 선하다는 판단의 근거라면 인간은 죄를 지을 경우 누구나 할 것 없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본의 아니게 남에게 피해를 줄 경우에도 죄책감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가 위중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자살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나 개인적인 견해로도 인간은 이따금씩 악하긴 할지언정 본래부터 악한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태어나 엄마 품에서 젖을 먹는 아기는 배고플 때 울고 배부를 때엔 자는 단순한 생활을 하지 사악한 생각은 할 수 없지만 자라면서 험한 경험을 하며 한 인간이 오염도 되고 변질도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듯 본질적인 선악의 정체에 대한 시각은 엇갈릴지언정 세상은 갈수록 정신보다 물질이 중심이 되어가고 있고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 위주로 감에 따라 선악을 둘러싼 윤리적 가치도 갈수록 의미가 약해지는 실정이다.


우선 세상의 가치가 "돈이면 전부"라는 물질 우선주의로 가긴 하지만 혹여나 정신적 가치를 물질 위에 둔다면 선악을 포함한 윤리의 기준도 지금보다는 훨씬 까다로울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연봉 수준으로 인간 가치가 결정되다시피 하고 부의 축적에 온 관심이 쏠리는 세상이 되다 보니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부가 얼마 정도인지에 따라 삶 자체가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성이 좋고 사고가 건전한 사람이 독선적이지만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윤리적 기반이 취약해진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부둥치다 보면 전통사회에서부터 오래도록 중시되어 온 '관용'과 '배려'는 그림 속의 떡일 수 있다. 또한 이 세상은 현실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은 아니다. 세상의 질서는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며 경쟁에서 승자는 좋은 보상을 받고 패자는 찬밥 신세인 게 슬프지만 세상의 법칙이다. 하지만 짐승이 아닌 인간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면 최소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밀림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따라서 승자와 패자 간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승자의 관용과 배려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것 또한 세상의 법칙이 아니겠는가?


성경은 인간은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해 모두 죄인이라고 말한다. 그 죄로부터 사함 받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와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고 한다. 성서의 말대로라면 세상의 종말이 올 때 다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심판을 하신다고 한다. 그 심판이 이루어질 때엔 세속적인 부나 연봉보다 얼마나 이웃의 아픔에 대해 또한 세상의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 고뇌했는지도 깊이 고려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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