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들에게 바치는 글

by 최봉기

내가 예순을 앞둔 지금 대기업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지인들이 하나둘씩 퇴직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나도 첫 직장에서 20여 년 근무하다 10여 년 전 퇴직을 하고 지금껏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내가 과거에 온실 생활을 하다 세상에 나왔을 때 온실에서 유리창 너머 바라보던 것과 현실은 너무 차이가 커 한동안 충격을 이겨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직장에서는 급여일엔 어김없이 통장으로 현금이 들어오고 또한 수시로 상여금도 나오기에 틈틈이 저축도 할 수 있었지만 바깥세상은 상여금은 말할 것도 없고 급여도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대개 성과 중심인데 직장에서 받던 것보다 형편없었다. 또한 퇴직 전엔 구멍가게를 하나 차려도 어느 정도 수입은 되리라 생각했는데 직장에서 받던 정도의 수입을 꾸준히 창출하는 것은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 일을 하다가 한동안 쉬며 지냈지만 그 후 눈높이를 낮춰 매달 급여를 받으며 하는 일을 찾게 되었다.


퇴직자는 오랫동안 회사에서 지내왔기에 연륜에 비해 세상 물정에 어둡다. 따라서 퇴직금을 노리는 주변의 지인들도 있다. 이들은 달콤한 조건을 제시하며 투자를 유도한다. 예를 들면 1억을 자기에게 맡기면 월 몇백씩을 이자로 준다고 한다. 이 경우는 처음 몇 달간 꼬박 줄지 모르나 몇 달 지나면 전화 연락이 잘 안 되며 결국 원금이 행방불명되기도 한다.


또한 퇴직자는 오랜 기간을 남 밑에서 구질구질한 월급쟁이로 지냈기에 폼나는 사업가로 변신해보려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나이 먹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의욕만으로 뛰어들 경우 그 분야의 종사자에게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그 경쟁자들은 현재의 위치에 있기까지 수십 년간 그 분야에서 산전수전 겪은 사람들이다. 의욕은 40대라면 몰라도 60대라면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퇴직자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나이이다. 재취업이 힘든 이유는 나이가 예순 가까이 된 사람을 직원으로 쓰려는 사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장의 나이가 예순 이하인 경우가 많고 예순 이상이라도 기왕이면 젊은 사람을 고용할 경우 일을 시키기도 편하고 더 오래 동안 일할 수 있어 나이 든 사람보다 조건에서 유리하다.


따라서 퇴직자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일단 어려운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혹 있다면 행운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할 마음을 가지는 게 맞다. 퇴직자는 과거 안정적으로 지낼 때와 현재를 비교하지 않는 게 스스로를 위해 좋다. 그럴 경우 자괴감만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 30년 정도를 큰 어려움 없이 일하며 살아왔다면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에는 드는 정도의 삶을 살아왔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젠 자녀도 자립할 나이라 무리해서 돈벌이할 생각을 할 필요가 없으며 건강관리에도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껏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지느라 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취미를 좀 더 심도 있게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바다나 산으로 여행 가면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며 함성을 지른다. 하지만 퇴직자들이여! 이제는 일출도 멋있지만 일몰의 모습을 볼 때 가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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