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그 과정을 부분 부분 나눠 살펴보면 무척이나 재미가 있다. 대개 10대, 20대 때의 남녀관계를 보면 동갑내기의 경우 여자가 고자세, 남자가 저자세인 경우가 많다. 여자는 남자가 좋아 보여도 대놓고 내색하지 않는 태생적 속성이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엔 대개 정반대로 남자가 고자세로 바뀐다.
20대까지는 여성이 남성보다 정신적인 연령이 더 높다고 한다. 여자가 볼 때 동갑내기 남자는 말하고 행동하는 게 마치 동생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또한 태생적으로 여자는 옷, 머리 모양, 말투 등을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꾸미며 막상 접근하면 빼는 듯한 애매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남자가 "혹시 시간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한가할 경우라도 "선약 있는데요"라는 식의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그런 반응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 있어요"라고 선뜻 대답해 버린다면 양파 껍질을 한꺼번에 벗겨버리는 누를 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결혼하기 전 알던 여자는 늘 마음을 감추는 통에 내가 늘 쫓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포장지로 덮고 존재감을 높이는 기교에 있어서는 특허를 여럿 보유한 프로였다. 당시 여자 경험이 일천했던 나는 순진하게도 그 여자는 거리의 수다쟁이와 달리 단아함과 청초함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고 순수한 사랑의 고백을 담은 편지를 하루에도 몇 통씩 국제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는데 결국 대답은 "No"였다. 허탈한 마음에 "앞으로 잘 살기 바란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끝으로 연락을 끊었는데 6개월이 지나자 "내가 문득 생각나서 연락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다 결국에는 서로 인연이 안 되는지 매우 고약하게 끝이 났다. 여자의 속성을 손에 땀과 피까지 묻혀가며 맛본 씁쓸한 경험이었다. 그 후로부터는 여성에 대한 환상을 저 강물에 모두 훨훨 던져버렸다.
이렇게 여자는 혼전에 최대한 튕기며 연애를 하게 되는데 결혼이 기정사실화 될수록 가정의 헤게모니를 놓고 급속한 자리이동이 이루어진다. 저자세이던 남자가 위로 올라가고 콧대를 세우던 여자는 밑천이 떨어진다. 지금이야 맞벌이가 보편화되어 여성이 돈도 벌고 남자랑 별반 차이가 없지만 과거에는 남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반면 여자는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출산과 양육을 해야 하므로 더 이상 튕길 것도 없어지고 이젠 자신의 속내를 감추거나 존재감을 부추길 일도 없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무척 현실적이다. 그 이유는 과거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못하고 남자에 예속되는 삶을 살았기에 그러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경제적으로 든든한 전문직 남자를 선호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 'Ran (난 : 변란)'을 보면 셰익스피어의 '킹 리어'를 각색하여 부친의 권력을 놓고 형제들 간 전쟁을 벌이는 스토리가 펼쳐지는데 아들 하나가 전사하자 그 아들의 처가 시동생이 있는 방에 들어가 칼을 목에 갖다 대고 "네가 죽였지?"라고 위협한다. 그러자 그는 벌벌 떨면서 "직접 죽이지 않았어"라고 한다. 그러자 그녀는 "누굴 시켜서 그랬지"라고 말하고 자신의 몸을 주며 "나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고 애원한다. 생존을 향한 여성의 현실적인 태도가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하게 나타나는 장면이었다.
결혼 전 여성들이 좋지만 싫은 척 속내를 감추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태도도 따지고 보면 현실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누나가 없는 나로서는 여성의 이해가 떨어졌기에 여성의 표리 부동한 모습이 특히 20대 때에는 혐오를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증오스러웠다. 지금 나의 집엔 두 사람의 여자가 함께 산다. 처와 딸이다. 이 두 사람도 태생적인 여성의 속성에서 탈피하긴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중학교 때 우리 딸은 같은 반 남자애가 정성껏 포장한 과자 상자를 전해주며 사귀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러니? 과자 잘 먹을게"하고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남자라 우쭐대는 여성이 있으면 기를 확 죽여버리고 싶긴 하지만 남성이란 사실보단 그래도 가족이 우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