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말이 몇 가지 있다. "노력하면 안 될 일 없다", "잘 살아보세" 등등. 70년대는 당시 대한민국 통치자가 헌법을 바꿔 대선에서 낙선될 위험을 없애며 영구 통치를 하기 시작한 때라 그런지 "기분이다 질러라" 식으로 의욕을 불태웠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이런 식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나 분위기 조성은 나름 의미는 있다. 하지만 노력해서 뭐든 해낼 수 있다면 세상에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실제로 보면 소수의 성공한 자가 있기 위해 실패해야 하는 자의 수는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많다. 하지만 노력을 해야 성공 근처에라도 가니 노력을 부추기는 걸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좀 더 냉정하게 또한 제대로 판단할 필요는 있다.
노력해서 생기는 결과는 첫째 성공, 둘째 실패, 셋째 실패 후 재도전, 넷째 재도 전후 성공, 다섯째 재도전후 또 실패, 여섯째 실패 후 곧장 단념 등이 있다. 일단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질이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차이가 적어야 하며 주어진 기간 동안 노력의 양과 질이 함께 좋아야 한다. 그러려면 경제적 환경 등 목표를 위해 몰입할 수 있는 조건도 좋아야 한다. 자질이 떨어질 경우 노력을 당연히 많이 해야 하지만 성공을 꿈꾸는 경쟁자들도 놀지 않고 뛴다는 사실이다.
대학시절 자질이 꽤 좋았던 한 동기가 입학과 동시에 외무고시를 준비하였다. 늘 열심히 공부하더니 2학년이 지나 1차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2차를 응시했는데 불합격. 1차 시험과 달리 2차 시험은 1차 통과자들 간의 진검 승부이니 경쟁의 강도가 1차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결국 1년 더 죽기 살기로 하더니 결국 2차에 합격했다. 3차 시험 보기 며칠 전 핏기 없고 극도로 초췌했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아마 혈압도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외시보다 더 경쟁이 치열한 시험이 사법고시이다. 지금은 로스쿨 체제로 바뀌었지만 사법고시로 법조인을 뽑았을 때 초창기에는 합격자 수가 조선시대의 과거 합격자인 30여 명 수준이었다. 사시 관련 눈물의 스토리와 애환은 말할 수가 없다. 전국의 법대 재학생을 포함한 각종 응시자는 잠도 자지 않고 합격의 그날을 떠올리며 시험 준비를 한다. 가장 우수한 집단인 S대 법대에서 3학년 때 최초로 합격자가 나오며 그다음이 대학원 때 또는 그 이후로 이어진다.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이 5수 만에, 현 대통령은 9수를 한 걸로 알려진다.
1차에 합격한 사람이 2차를 봐서 떨어져 점수를 확인하면 1~3점 차가 줄을 잇는데 1년 후면 되겠지 하고 또 응시해 또 근사한 차이로 떨어지니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는 다른 일에 도전할 시기를 놓쳐 낙오자, 폐인이 되거나 심할 경우 충격을 받아 정신병자가 되는 경우까지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성공한 사람의 영광은 좌절한 사람의 고통에 비례한다. 좌절한 사람의 고통이 가벼운 일은 성공의 영광도 크지 못한 법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노력하면 안 될 일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 이 말엔 최선을 했는데 실패할 땐 어찌하는가 하는 내용은 살짝 빠져있다. 국가로 본다면 노력하는 자가 많아지고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나올수록 발전한다. 그 와중에 아깝게 성공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나름의 차선책을 찾겠지만 평생 패배자로 신세 한탄을 하며 살아야 한다면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제 노력해서 아깝게 실패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적 대안 마련 등 보완조치도 나와서 인재풀도 확충하며 뛰어난 자질의 고등 실업자가 줄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