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발전의 의미를 찾아서

by 최봉기

현재와 1970년대를 비교한다면 비교의 의미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당시의 직업 중 기억에서 사라진 것들만 해도 여럿이다. 사진기가 귀하던 때라 관광지에서 사진 찍을 때는 사진사들에게 돈을 내고 찍었다. 또한 당시 버스에는 차비를 받고 차문을 여닫던 차장이란 직업도 있었는데 버스 문이 자동화되다 보니 차장이란 직업도 기억에서 사라져 운전자가 차장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기타 사라진 직업들 중 '소매치기'도 있다.


그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라면 컴퓨터 활용을 들 수 있다. 2차 대전 때 암호해독 목적으로 개발된 컴퓨터가 발전하여 현재 인구조사와 성적처리, 금융거래, 의료 활동 등에 컴퓨터가 활용되며 삶을 크게 변화시켜 놓았다. 그 시절 은행에서는 주산으로 계산을 했고 현금의 입금, 출금은 수기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 한 번은 주산학원을 등록했는데 주산 배우기가 왜 그리도 싫었을까? 여름철이 되면 냉방이 되어 있어 시원한 바람을 쐬는 유일한 장소가 은행이기도 했다.


당시엔 아파트란 거주시설이 없어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면 집에서 목욕하기가 어려워 대중목욕탕에 가서 온탕 냉탕을 오가며 목욕을 하였다. 또한 지금과 같이 한집에 서너 명이 단출하게 사는 핵가족과 달라 크지도 않은 집에서 노인 포함 7~8명이 함께 사는 경우도 많아 한방에 두서너 명씩은 함께 생활했다. 할머니는 시집살이를 통해 터득한 가사 노하우를 몸소 전수해 주셨다. 쌀겨를 넣어 베개 만들기, 콩으로 메주 만들어 된장, 간장 담기 등이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한문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고 옛날 집안 얘기나 고인이 되신 증조부, 고조부의 한자 존함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나는 친척 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증조부, 고조부 존함을 한자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부친이 장손이시라 제사 때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두 모여 1박 2일을 함께 지내느라 집이 북적거렸다. 어릴 땐 집에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에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 다들 어떻게 살았을까 싶지만 지금과는 달리 모두 어려웠기에 상대적인 박탈감은 적었다. 고생스러웠지만 견디며 살았고 지금은 흔해 빠진 자가용을 소유한 소수 부유층을 제외하면 빡빡한 생활을 했기에 인간들 간에 끈끈함이란 게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주부들끼리 점심 먹고 모여 고스톱을 치며 집안 얘기, 세상 얘기를 나눴고 갑작스러운 일로 사정이 어려워진 집에 남편 몰래 챙겨둔 비자금을 융통해 주기도 하였다.


지금과 과거를 비교할 때 꼭 지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물질적인 측면의 풍요와 발전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과 비교할 때 그때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천대받는 노인의 권위가 지금보단 나았다고 생각된다. 지금 세상이 그때에 비해서 살기 좋아졌다 하지만 무질서하고 이기적이고 예의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집안에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는 존재가 없어 제대로 된 정신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가 동양에 대해 극찬하기를 서양은 핵가족화로 노부모와 따로 살지만 동양은 노부모를 모신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대한민국도 핵가족화로 노인을 모시려 하지 않다 보니 평생을 가족 돌보느라 자녀들 교육시키느라 고생해온 노인들이 다른 이도 아닌 자기 자식들에 의해 홀대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진정한 발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컴퓨터나 인공지능 못지않게 인간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와 같이 과학 기술적인 발전만 추구한다면 인간과 인간에게 편리함을 주는 컴퓨터란 도구 간 주종관계가 뒤집어져 오히려 컴퓨터란 도구가 왕이 되고 그 새로운 왕을 향해 인간들이 큰 절을 하는 세상이 되는 건 아닐지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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