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수독 오거서'란 말이 있다. 남자가 태어나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천 년 전 두보가 학식과 인품을 갖춘 '백학사'란 사람의 집을 지나가다 지은 시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엔 종이로 된 책이 아니라 대나무 조각에 글씨를 썼던 죽간 형태였다. 죽간 한 권은 종이책으로 50페이지도 안될 분량이었다. 따라서 수레 하나에 죽간 1,000권을 싣는다면 한 수레에 5만 페이지, 다섯 수레면 25만 페이지이니 500페이지 책 500권 정도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 500권의 책을 읽을 경우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천권을 읽을 경우 누구랑 어떤 얘기를 해도 막힘이 없고 2천 권을 읽을 경우 세상 만물의 이치에 도달하여 자기가 평범하게 살려해도 세상이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고 한다. 500권의 책을 읽으려면 스물에 대학에 입학해 전공서적을 1년에 열 권씩 (월 0.8권) 꾸준히 독파할 경우 10년에 100권인데 500권이 되려면 5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1년에 약 20권을(월 1.6권) 읽을 경우라도 25년이 걸리게 되어 45세가 되면 석학 소리를 듣게 될 수 있다. 그것도 자질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 다른 일 하지 않고 공부에 몰두할 경우일 것이다.
전문 분야의 책이 아닐 경우라면 좀 더 많은 책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독서량 하면 손에 꼽히는 소설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이란 자전 소설에서 작가는 군 입대 전 몇 년 동안 천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년간 200~300권을 읽었다 치면 하루에 약 한 권 정도의 책을 읽은 걸로 보인다. 읽은 책이 대부분 문학 관련한 것들이라고 하니 철학이나 기타 인문과학 서적보다는 읽는 속도가 빨랐으리라 짐작된다.
'젊은 날의 초상'이란 책에서 이문열은 부친의 월북으로 연좌제에 걸려 형사의 감시도 받으며 어렵게 공부해서 S대에 진학을 한다. 그리고는 지적인 욕구를 불태우며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는데 자신과 비슷한 지적인 열정의 소유자인 '하가'와 '김가'를 만났고 '혜연'이란 여성과는 지적인 교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되돌아보건대 자신이 주변으로부터 지적인 화려함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성찰도 없이 지적인 우울함을 우쭐대며 과시했던 유치한 것이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결국 독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인생을 먼저 살다 간 여러 현인들이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여 지혜롭게 살기 위한 거울로 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자녀 세대들은 대개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후 태어나서인지 삶의 근본적인 성찰보다 좋은 차나 몰고 좋은 옷이나 입는데 관심을 갖는지 모른다. 삶이란 게 정답은 없다지만 다양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기반 위에서 보다 견고한 삶을 영위하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