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사회는 과거 농사가 중심이던 전통사회와 달리 물자가 풍부할 뿐 아니라 교통과 통신 등 과학 기술의 발달과 정보화로 인해 삶의 질이 좋아졌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가치나 소중함이 경시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물질적인 발전은 정신적인 상승효과로 이어져야 하건만 현실은 정반대인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차라리 함께 못살던 시절엔 자기가 배가 고플 때면 그래도 남들의 배고픔이 마음속에 그려졌건만 배가 불러지고 물질적인 만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 달콤함에 취해 자기 잇속만 채우려는 이기심이 만연되고 있다.
이러한 이기적인 풍토 속에서 독소처럼 사회를 좀먹게 하는 신종 공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음공해'가 바로 그것이다. 대기나 수질 오염 등 물질적 공해는 법적 혹은 과학적인 대응이 가능하지만 소음의 경우 양심적인 대응 외에는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최근 특히 핸드폰의 보급으로 말미암아 곳곳에서 전화통화로 인한 소음이 진동한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혼자서 아무리 큰소리를 내어도 별문제 될 건 없지만 문제는 지하철 등에서 긴 통화를 하는 경우이다. 좁은 공간에서 그 통화의 총탄을 옆에서 맞는 사람의 경우는 고문이 따로 없다. 자신이 옆사람에게 그러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우선 그 사실을 알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옆의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낄낄대며 기분 나는 대로 통화를 하는 사람의 수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 앞으로 법적인 대응까지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나의 경우 지하철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내가 내릴 때까지 30분 이상 통화를 하는 젊은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함께 가는 곳에 앉아서 그렇게 오래 통화를 하면 어떡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으면 "죄송합니다"라고 해도 뭣 할 텐데 그 인간은 미안한 맘이라곤 없이 "전화 좀 하는데 왜 그러세요?"라고 응답했다. 또 한 번은 지하철 종점에서 지하철이 출발하기 전 계속 통화를 하는 젊은 인간이 있어 퉁명한 목소리로 "전화 끊어. 여기 공공장소야."라고 했더니 전화기에 대고 한다는 소리가 "전화 끊어야겠다. 공공장소란다"였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할 경우 한마디 하는 소신 있는 어른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젊은 계층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하는 태도가 마치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 양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나이 든 사람이 무슨 지적이라도 하면 머리를 쳐들고 대드는 인간들 때문은 아닌지?
과거엔 그래도 인생을 좀 더 경험한 어른들은 권위가 있었고 어른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늙은 사람이 뭔 말을 해도 젊은 애들은 콧방귀도 안 뀌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금 젊은 친구들도 머지않아 기성세대가 될 터인데 지네 아들 나이 애들이 버릇없이 나올 경우 어찌할 것인가 이다.
지금껏 현대사회에 있어 사소할지 모르지만 꽤 심각한 사회현상인 소음공해에 대해 스케치해 보았다. 소음 발생은 기본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다 보니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풍조 속에서 주변 사람의 권익을 무시하는 야만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누군가 지하철에서 오래 전화기를 들고 낄낄대는 사람에게 다가가 "조용히 쉬거나 책이라도 볼 수 있는 권리를 짓밟는 야만행위를 당장 멈추시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적인 선각자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