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과 어리석음

by 최봉기

전통적으로 유교사회였던 대한민국은 질서에 순응하며 예의 바르고 윗사람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우대받아 왔다고 생각된다. 조직에서 집안 배경이나 학위 혹은 자격증도 없으면서 기존 질서에 도전적이고 주장이 강한 사람이 있다면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라도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윗사람이 싫어할 것으로 보인다. 능력도 떨어지면서 뻣뻣하다면 다른 부서로 보내거나 심하면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 쉽다. 조직에서는 능력이 있으면서 고분고분한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1961년 5.16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총리란 사람이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체념하며 수도원에 잠적, 성모 마리아상 앞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당시 쿠데타 관련 소문은 한참 전에 돌았는데 자신의 안위를 위해 쿠데타군과 한 통속이 되어버린 참모총장에게 쿠데타 사실의 진위 조사를 지시하고 "근거 없다"는 보고만 전적으로 믿다 새벽에 총성이 울린 것이다. 쿠데타 가담 병력도 전체 군의 일부로 크게 위협적이지 못하여 제대로 대응만 했더라면 쿠데타 가담자는 처형을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4.19로 부패권력이 물러난 후 한 나라의 통치 책임을 진 총리란 사람이 그런 이해 안 되는 대응을 했다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혹자는 그 사람이 성서대로 사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착하기보다 어리석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학교나 집에 애를 먹이지 않고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착한 범생 (모범생)이라 불렀다. 그런 사고가 학창 시절에는 의미 있는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에 적용할 경우 무능한 걸로 이해될 수 있다. "학교에서 모범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고 학교에서 열등생이 사회에서 우등생"이란 말이 있다. 착하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걸로 위치 조정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최고 명문 동경대의 경우 학풍이 전통을 중시하다 보니 기본 자질 측면에서 한수 아래인 와세다, 교토 등 도전적인 학풍을 가진 학교보다 노벨상 수상자가 적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에는 소수의 양반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도전적, 진취적인 것은 금기시하며 신분간 장벽이 높고 전통적인 질서를 중시하는 성리학을 치국 이념으로 받아들여 유지해 왔다. 그러한 풍토에서 여성은 현모양처, 남성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적인 인간형이 전형적인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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