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결혼식 때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고 국가 행사 때 애국가를, 졸업식 때에는 교가를 부르곤 했는데 이제 기상 시 알람에도 또한 전화를 할 때도 나팔소리나 뚜뚜 소리 대신 음악이 울린다. 1988년 10월 교도소 이감 중 탈주했던 지강원을 비롯 12명이 9일간 도주하다 경찰과 대치할 때 비지스의 곡 '홀리데이'를 듣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급박한 순간에도 음악을 찾게 된다는 것은 음악에 대한 인간의 교감이 무척이나 크다는 사실이다.
음악과 인간과의 교감이 큰 이유는 음악이 기쁠 땐 기쁨을 배가시켜 주고 슬플 땐 위로를 주기 때문이며 이밖에도 음악은 외로울 때 좋은 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고교시절 음악은 특히 생활의 중요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학교에서 시달리다 밤늦게 귀가해서 라디오를 켜면 즐거운 음악을 접할 수 있었는데 듣는 순간 하루 종일 쌓인 정신적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다. 당시 자주 듣던 음악이 ABBA, Beatles, Smokie, ELO, Queen 등이 불렀던 곡들이었다.
음악은 종류별로 고상하고 격조 있는 클래식, 경쾌하고 남성적인 록, 잔잔한 발라드, 중년들에게 친근한 트롯 등 매우 다양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취향대로 듣고 즐길 수 있다. 음악이 갈수록 삶 속에 넓고 깊게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은 뭐니 해도 생활 수준이 나아졌기에 그럴 것이다. 살기가 어려울 때엔 시간 나면 일을 해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자기 바빠서 라디오나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만 할 뿐 즐길 여유도 없었다.
음악과 뗄 수 없는 게 영화이다. 세계적인 명화에는 유명한 주제곡이나 삽입곡이 있었고 어찌 보면 스토리보다 영화음악이 먼저 떠오르기도 했다. 추억의 영화들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닥터 지바고', '대부' '남과 여', '맨발의 청춘' 등에 나왔던 음악은 언제 들어도 마치 오랜 친구와도 같은 기쁨과 반가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음악은 특정 상황이나 추억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해주는 마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특정 곡이 나오면 그 곡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웃긴 얘기지만 나는 한때 (지금 나에겐 별 의미도 없는)한 여자와 사귀었는데 그때 즐겨 듣던 음악을 지금 우연히 듣게 되면 기분이 얄궂고 애매모호해지기도 한다.
음악은 애향심과도 깊은 관련을 가진다. 지역별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있다. 부산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부산갈매기', 목포 하면 '목포의 눈물', 대전하면 '대전 블루스', 인천 하면 '이별의 인천항', 제주도 하면 '감수광' 등이다. 이중 야구장에서 지역별 팀 응원가가 되어 있는 곡들도 있다. 1983년도에 해태 타이거스가 우승했을 때 관중석에서 호남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불렀던 곡이 '목포의 눈물'이었다. 당시 호남이란 곳은 핍박받던 지역이어서 그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애환을 달랬다고 한다.
음악은 인간 외에 동물과 식물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젖소에게 음악을 듣게 하면 젖을 더 많이 생산한다고 하고 논이나 밭에 음악을 켜면 벼나 과일의 수확량도 많아진다고 한다. 이렇듯 좋은 음악을 아직 삶 속에 음악의 향기가 없는 곳에 그 씨앗을 뿌려 본다면 어떨까? 한때 프로야구에서 큰 부상을 여러 번 당하고도 끝까지 이겨내며 '불사조'라 불리던 박철순이 말년에 경기에 나와 투구를 하고 팀이 승리를 거둘 때 잠실 운동장에 '마이웨이'란 곡이 울려 퍼졌다. 그 곡을 들었던 팬들은 가슴 뭉클함을 느끼곤 했다.
음악을 통해 그런 감동과 교감을 연출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가령 위독한 환자가 세상과 작별할 때 음악과 함께 평온함을 느끼며 눈을 감고 유가족들도 그 곡을 통해 고인을 추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산모가 생명을 출산할 때 그 고통을 달래주고 탄생의 환희를 축하해 주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밖에도 마라톤 경기에서 선두주자가 40킬로씩 되는 험란한 과정을 이겨내고 운동장에 도착하여 마지막 지점까지 달릴 때 웅장하고 장엄한 음악을 들려준다면 한순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영광을 느낄 것이다.
군에 입대해서 신병교육대에서 완전 군장을 하고 밤새도록 야간 행군을 할 때 동틀 무렵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부대 정문 앞까지 와서 군악대가 연주하던 군가를 들을 때 눈가에 이슬이 맺혔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