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함과 유연함

by 최봉기

힘든 상황에서도 초지일관의 자세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가기 전에 시기를 봐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양쪽 중에서 어떤 게 나은지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다. 끝까지 갔다 결과가 좋아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경우엔 전자가 좋을지 모르지만 끝까지 갔는데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 전자와 같은 처신은 유연함이 없이 우직하다는 얘길 듣는다.


우직함이란 말이 나오면 문득 떠오르는 스포츠 경기가 하나 있다. 1982년 11.13 거행된 WBA 세계 라이트급 복싱 타이틀 매치이다. 한국의 김득구가 챔피언 레이 멘시니와 라스 베가스 시저스 팰리스에서 타이틀전을 치른다. 그 시합을 앞두고 김득구는 맹훈련을 했으며 "관을 준비해 놓고 가겠다. 패하면 절대로 걸어서 링을 내려오지 않는다"라고 선언했으며 실제로 성냥갑으로 모형관을 준비해서 가지고 갔다. 결과는 9회까지 호각세를 보이며 멋진 승부를 펼쳤지만 그 후로 체력이 고갈되며 난타를 허용하고 정신력으로 버티다 14회에 강타당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병원에 실려갔는데 뇌사상태에 빠져 장기기증을 하고 삶을 정리하였다.


당시 복싱계는 김득구가 아직 세계적인 선수와 대결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를 했다. 얼마 전 왕년의 복싱 챔프 장정구는 TV 프로에 나와 말하기를 원래 김득구는 강펀치의 인파이터가 아니고 치고 빠지는 스타일의 복서였기 때문에 자신보다 펀치가 훨씬 강한 멘시니 같은 인파이터와 정면대결을 할 경우 승산이 희박했다고 했다. 차라리 약간 약은 시합을 했다면 오히려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몸 사리지 않는 투혼이란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대등할 경우라면 몰라도 한쪽으로 전력이 크게 기울 경우라면 멀쩡한 한 선수의 생명이 끝나게 할 수도 있다.


상황별로 우직함이 요구되는 경우와 유연함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진정 우직함만으로 밀어붙여 뭔가 해낼만한 상황이었다면 김득구에게 뜨거운 찬사와 햇살이 쏟아졌건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우직함과 유연함 그 둘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실제로 우직한 돌쇠가 꾀돌이의 유연함을 겸비하긴 어렵다. 하지만 상황을 잘못 판단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밖에 없기에 조심할 필요도 있으며 주변 사람의 조언에 귀라도 기울여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큰 불행을 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김득구 주변의 지인들은 목숨을 걸고 뛰어든 김득구에게 잘못하면 선수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말을 왜 해주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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