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즐기기

by 최봉기

살면서 즐길 수 있는 일들은 꽤 많이 있다. 미식가들은 맛있는 음식을, 여행가들은 여행하는 것을 즐기는데 영화광, 야구광 등 어떤 것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경우를 포함 애주가, 애연가에 호색한 등 다소 건전하지 못한 취향이 있기도 하다.


'워크홀릭'이라 불리는 일중독자가 있다. 좋아서 즐긴다기보다는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마치 알코올 중족자처럼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어렵고 대개 남들이 꺼리는 거라도 한번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달리 말하면 힘든 것을 선택하여 그 고통과 고독을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즐긴다는 의미가 영화나 음악 감상과 같은 건 아니지만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결국 이겨냄으로써 환희를 느끼는 것이다.


운동선수들 중에서도 무섭게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어찌 보면 피를 말리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그 후에 찾아오는 희열을 삶의 최고 목표로 삼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바로 '프로 중 프로'이다. 이들은 숨 막히는 승부를 즐기고 최후의 승리자가 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프로복싱 WBC 라이트플라이급 전 챔피언 장정구는 13세 때 복싱을 시작해서 15차 방어까지 성공한 후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고 국내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


복서는 링에서 맞기도, 때리기도 하지만 매 시합 때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 체중조절이다. 물을 포함해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심한 경우 마지막 몇 그램을 빼기 위해 입안에 있는 침까지 억지로 뱉기도 한다. 그런 고통과 고독을 즐길 수 없다면 복서의 길을 갈 수 없다.


인생이란 원래 답은 없다. 어찌 태어나서 살다가 때가 되면 눈을 감는 게 인생이라 해도 누구 하나 아니라고 반박하기는 어렵다. 삶의 목표나 사는 의미 등은 삶이 사람에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살면서 스스로 찾고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별로 계획한 목표가 있다면 그걸 달성하기 위해 어떤 이는 목숨을 걸고 매진하는데 그게 곧 생활이고 삶의 의미가 되어 버린다.


대학시절 연극이란 걸 잠시 해본 경험이 있다. 연극은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인생과 무척 흡사하다. 배우는 불이 꺼진 객석에 앉은 관객들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손짓, 몸짓을 하며 연기를 한 후 무대에서 내려오면 다음 연기자가 그다음 장면을 연기하고 마지막 장면이 끝날 때 막이 내려간다. 삶이란 게 주어진 기간 동안 인생이란 고독한 무대에서 홀로 연기를 하는 과정인데 자기의 순서가 끝나면 유유히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라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 같다.


연극이 끝나면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여 '쫑파티'라는 걸 한다. 그때 지금껏 감춰진 허무가 순식간 밀려온다. 연극 경험자 중에서는 이러한 고독 자체를 즐긴다는 사람도 있다. 고인이 된 어느 교수는 자신이 연극이 끝난 후 고독을 즐겼던 경험을 말하며 "갈 때까지 갔다"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극단적인 두 종류의 고독 즐기기를 비교해 보았다. 하나는 고통을 참고 견디는 고독이고 또 하나는 허무 그 자체를 끝없이 즐기는 고독이다. 어떤 게 과연 정답인지 단정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은 크게 달라지리라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 오는 날 바라보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