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현재'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배는 '시간'이란 바다 위를 달린다. 지금까지 내가 탄 배는 수도 셀 수 없는 항구를 지나왔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갈지도 사실 알 수 없다. 단지 지나쳐 온 곳들 중에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가보고 싶은 곳도 있고 "그 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온다 해도"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도 있다. 내가 지나쳐 온 곳들은 현재 있는 곳보다는 여유롭지 못한 곳이긴 하였지만 은은했던 삶의 향기는 오히려 지금이나 다음에도 경험하기 힘들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의 수준은 과거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정도라 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살던 곳에서는 집마다 수도가 없어 아침마다 살던 동네 한 곳에 있던 수도에 양동이를 들고 길게 줄을 서서 물을 받아 집으로 가져갔다. 여름 땐 오후가 되면 얼음 판매소 앞에 또한 길게 줄을 서서 톱으로 자른 얼음 덩어리를 줄로 묶어 들고 집으로 갔다.
우리 모두가 과거로 돌아가서 이런 고달팠던 생활을 다시 하게 된다면 어떨까?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부자로 살던 집이 하루아침에 망해서 큰 집을 정리해 꼭 필요한 살림 도구만 가지고 달동네로 가서 여러 가족이 단칸방에서 생활한다고 생각해 본다면 피부에 더 와닿으리라 생각된다.
지나가 버린 과거의 추억은 어렵고 고달팠을지언정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우선 이제는 그런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다시금 그때로 돌아갈 일이 없을 것 같고 또한 그리 될 필요도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과거의 고달픔을 일부러 찾아 뱃머리를 돌리는 (상식적으로 볼 때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간혹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울지 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가 그러한데 모르긴 해도 알려지지는 않았겠지만 유사한 또 많은 의인들이 있을 것 같다
생활은 여유롭고 풍족해졌건만 인간들 간 교감은 갈수록 적어지고 자기 이해관계에 직접 도움되지 않는 것들은 무관심하고 귀찮게 생각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존재가 필요한 곳에 자발적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퍽이나 고무적이다. 남의 나라 전쟁에 한국인 4명이 의용군으로 참전하여 그중 2명은 사망한 걸로 나온다. 한국전쟁 때에도 많은 해외의 젊은이들이 몸 사리지 않고 와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
현재 삶의 항해가 어떤 곳으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현재 가는 방향이라면 극도로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곳은 아닐까 두렵기만 하다. 만약 전쟁이나 재해 등 참혹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세상이 갑자기 힘들어진다면 그간 먼지로 뿌옇게 덮인 인간들 간의 우애와 온기가 되살아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