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와 초상

by 최봉기

인간이 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자녀를 낳아 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러 종류의 잔치가 있다. 백일과 돌잔치, 결혼식, 환갑잔치, 칠순잔치에 은혼식 (결혼 25주년)과 금혼식(결혼 50주년) 등 다양하다. 과거에는 출생신고를 조금 늦게 했다고 한다. 돌은 고사하고 백일을 못 넘기고 병으로 유아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랬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백일은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 잔치 때 등장했던 단골 메뉴는 떡과 고기였다. 고기도 집에서 키우던 닭과 돼지를 잡았지 소는 농사일을 하는 중요 도구여서 도축 허가를 받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기도 했다. 과거 하루 두 끼나 겨우 먹던 시절에 떡과 고기로 차려진 상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칠순, 팔순에 구순까지로 수명이 길지만 과거에는 환갑까지 살면 곧 삶을 정리하였기에 현재는 장수가 축복인지 재앙인지까지도 논란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오래 살며 알게 된 소중한 것들을 자손들에게 잘 전해줄 수 있다면 가정이나 사회에 무척 보배로운 재산이 되리라 보인다. 세상이 얄퍅해지다 보니 부모가 가진 재산에 관심을 집중할 뿐 늙고 병든 노부모를 내팽개치는 일도 많아졌다. 문제는 자신들이 부모에게 했던 걸 자식이 배워 똑같거나 더한 짓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좋은 걸 더 좋게 하기보다 나쁜 걸 더 나쁘게 하는 존재인가 싶다.


세상이 편리한 걸 추구하다 보니 미풍양속까지 한물갔다고 사장시키고 좋지 못한 것들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세상을 더럽히고 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한국의 효를 본받아야 한다"라고 극찬했으며 "대한민국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근면성실 때문만은 아니고 효사상과 예의범절 때문이었다"라고 했다.


한때 나의 부친은 대로에서 결혼식을 막 끝내고 풍선과 장식을 치장한 웨딩카를 보았는데 그 뒤로 검은 띠를 두른 상조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부친은 그때 갑자기 "인생은 앞차로 들어가 뒤차로 나가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앞차의 입장에서는 뒤의 차량이 성가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장은 뒤차가 보이지 않는 다른 길을 찾으려 애도 써보겠지만 삶이란 걸 놓고 볼 때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인에 대한 무관심, 특히 자식들에 의한 홀대도 근본적으로는 삶 자체에 대한 성찰 부족 때문이라 생각된다. 눈앞에 보이고 계산되는 것만 신경 쓸 뿐 자신과 관련된 것들이라도 약간 시간적으로 먼 것들은 신경을 끄고 살다가 결국 스스로 피해자가 된다. 학교에서 자녀가 잘못해 받는 체벌까지 폭행으로 교사를 처벌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교사가 월급 받는 정도만 대충 일하고 일찍 퇴근이나 하지 열정을 다해 제자에게 올바른 삶과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주려 하겠는가?


자녀가 태어나 새로운 가정의 미래를 밝히고 그 자녀를 잘 키우고 성장시킬 때 가정과 국가는 진정 발전한다. 그런 취지에서 백일이나 돌잔치를 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자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하면 새로운 자녀가 생기지만 반대로 그 부모는 늙어 환갑을 지나 머지않아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이 된다. 이러한 삶의 사이클 속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은 이어진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이라 하지만 그 원인은 무관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경제의 발전과 도시화, 핵가족화 속에서 짓밟힌 효의 정신과 예의범절을 회생시킬 수 있다면 자신이 언젠가 받게 될 퇴물 취급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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